고대사

고구려 우씨 왕후의 두 번 결혼, 형사취수제는 과연 일반적인 풍습이었을까?

solutionadmin 2025. 8. 30. 18:11

권력과 왕위를 두고 갈등하는 우씨 왕후와 산상왕을 상징하는 상상이미지 / 출처: 작성자 직접 제작(AI 생성), 저작권 보유 © 2025

안녕하세요, 역사 블로그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사'의 독자 여러분!

오늘은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우씨왕후> 방송을 계기로 고구려의 흥미로운 결혼 풍습, 특히 형사취수제와 서옥제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이 드라마는 고국천왕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왕위를 노리는 왕자들과 권력을 잡으려는 다섯 부족의 표적이 된 우씨 왕후가 24시간 안에 새로운 왕을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그중에서도 고국천왕의 왕후였던 우씨 왕후가 동생인 산상왕과 재혼한 사건을 중심으로, 과연 고구려 사회에서 이러한 풍습이 보편적이었는지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우희 역을 맡은 전종서와 을파소 역을 맡은 김무열의 연기력이 드라마의 몰입도를 한층 높일 것으로 기대됩니다. 전종서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우씨 왕후 역을 맡아 첫 사극 도전에 나서며, 김무열은 산상왕 역을 맡아 내면의 갈등을 풀어낼 예정입니다.

☟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 과부와 가족을 보호하는 풍습

형사취수제(levirate)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며,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형이 죽으면 아우가 형수를 취하거나,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친어머니를 제외한 아버지의 처첩을 취하는 형태가 나타났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이나 흉노 같은 유목 민족들에게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관습이었죠.

 

『삼국지』 부여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삼으니, 흉노와 같은 풍속이다.”(『삼국지』, 부여전)

 

이러한 풍습이 존재했던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고대 사회, 특히 전쟁이 잦았던 유목 민족 사회에서는 남자가 전쟁에서 죽거나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로 인해 과부가 된 여성과 그 자녀들은 생활 능력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죠. 형사취수제는 이러한 과부와 가족을 혈족이 부양하고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또한, 아내를 남편 집안의 재산으로 인식하여 여성 노동력의 이탈을 막고 재산을 상속한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 고구려 우씨 왕후와 산상왕의 결혼: 정치적 야망인가, 관습인가?

고구려 역사에서 형사취수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산상왕(山上王, 재위 197~227)이 형수인 우씨 왕후(于氏王后)를 아내로 맞이한 사건이 손꼽힙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국천왕(故國川王, 재위 179~197)이 아들 없이 갑작스럽게 승하하자, 왕후 우씨는 왕의 죽음을 비밀에 부치고 후계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부족인 연나부(절노부)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차기 왕을 선택하려 한 것이죠.

 

『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국천왕이 승하하고 우씨는 왕위를 둘러싼 혼란을 막기 위해 형제들을 찾아갔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1. 발기(發歧)의 거절

우씨는 먼저 고국천왕의 큰 동생인 발기를 찾아가 왕위를 이을 것을 암시했습니다. 그러나 왕의 죽음을 알지 못했던 발기는 밤에 왕후가 찾아온 것을 "예(禮)가 아니다"라고 꾸짖었으며, 왕후의 제안을 반역으로 오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발기는 왕위 계승 서열 1위였기에 굳이 위험한 도박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2. 연우(延優)의 선택

발기에게 무안을 당한 우씨는 둘째 동생인 연우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연우는 예의를 갖춰 왕후를 맞이했고, 우씨는 연우에게 고국천왕의 죽음을 알리며 왕위를 제안했습니다. 연우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우씨와 함께 궁궐로 들어갔고, 다음날 우씨는 선왕의 유언을 위조하여 연우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연우가 바로 고구려의 제10대 산상왕이 된 것입니다.

3. 우씨의 재혼

산상왕은 자신을 왕위에 오르게 한 형수 우씨를 다시 왕후로 삼았습니다. 이로써 우씨는 두 대에 걸쳐 왕후가 되는 특이한 기록을 남겼죠.

4. 후대의 평가와 우씨의 유언

발기가 이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고, 산상왕은 왕권 강화에 힘썼습니다. 정사에 기록은 없지만, 우씨 왕후 스스로 죽기 전 "내가 도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였으니 장차 무슨 면목으로 고국천왕을 뵐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산상왕의 능 옆에 묻히기를 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그녀의 재혼이 당시 사회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조선시대 역사서에서는 그녀의 결혼을 비난했지만, 고구려에서는 하나의 결혼 방법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 고구려의 또 다른 결혼 풍습, 서옥제(壻屋婚)

중국의 역사 기록, 특히 『후한서』와 『삼국지』 등에서는 고구려의 결혼 풍습으로 형사취수제보다는 서옥제를 주로 언급합니다. 서옥제는 데릴사위제를 의미합니다.

결혼 과정

혼인을 정하면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돼지고기와 술을 보내고, 저녁이 되면 신랑이 신부 집 대문 밖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신부와 함께 잘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두세 번 청하면 신부의 부모가 허락하여 신랑과 신부가 서옥(사위 집)에서 지내게 됩니다.

서옥

서옥은 신부 집 뒤편에 지은 작은 별채입니다.

노동력 제공

신랑은 서옥에서 살며 신부 집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자식을 낳아 장성하면 그때서야 신부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고구려에서는 결혼 시 재물을 받지 않았으며, 재물을 받으면 수치스럽게 여기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신랑의 노동력을 이미 제공받았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 결론: 변화하는 고구려 사회 속 결혼 풍습

정리하자면, 형사취수제는 북방 민족 사이에서 주로 유행했으며, 우리 민족 고대 국가 중에서는 북쪽에 위치한 부여와 고구려에서 확인되는 풍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에서는 부여만큼 보편적이지 않았고, 서기 2~3세기경이 되면 지배층 사이에서도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 풍습으로 변모했습니다. 우씨 왕후의 사례 역시 개인의 정치적 욕망이 크게 반영된 예외적인 경우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고구려는 초기 친족 집단의 공동체적 유대가 강하고 형제 상속이 이루어지던 시기에는 취수혼이 일반적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3세기경부터 왕위 계승이 부자 상속으로 고정되고 농업 생산력이 발전하며 친족 관계가 해체되면서 직계 가족이 중시되는 사회로 변화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형사취수제는 점차 소멸하고, 대신 사위의 노동력을 중요시하는 서옥제가 더욱 친숙한 풍습으로 자리 잡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씨 왕후의 이야기는 단순히 고구려의 한 왕비가 두 명의 왕과 결혼한 이야기가 아니라, 변화하는 고구려 사회의 결혼 풍습과 왕실의 복잡한 정치 역학 관계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드라마 <우씨왕후>의 전개에 대한 기대

오늘 이야기의 역사적 사실은 위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씨왕후>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얼마나 충실히 반영할까요? 아니면 극적 재미를 위해 상상력을 더할까요? 드라마는 우씨 왕후가 왕위를 계승하려는 고군분투를 그리며, 24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음모를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고려해야 할 부분은 형사취수제와 재혼에 대한 논란, 그리고 우씨 왕후의 정치적 야망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우씨 왕후가 정치적 계산으로 재혼을 결단한 측면이 강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이를 더 드라마틱하고 감성적으로 풀어내려 할 가능성도 큽니다. 우씨 왕후와 산상왕의 관계가 어떻게 묘사될지, 그들의 감정선과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이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합니다.

 

특히 주연을 맡은 전종서와 김무열의 연기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전종서는 우씨 왕후 역할을 맡아 첫 사극에 도전하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왕후를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가 됩니다. 김무열은 산상왕 역을 맡아 정치적인 결단과 내면의 갈등을 어떻게 소화할지, 두 배우의 호흡이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일 것입니다.

 

이 드라마가 역사적 사실을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할지, 그리고 얼마나 창의적인 상상력을 발휘할지, 그 전개가 매우 기대됩니다. 시청자들이 역사의 진실에 어떻게 공감할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풀어낼지 두고 볼 일입니다!

오늘 이야기가 유익하셨기를 바라며, 다음에도 더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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