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대조영과 발해 건국: 천문령의 승리, 패망을 딛고 세운 새로운 국가

solutionadmin 2025. 9. 13. 06:27

대조영과 발해 건국: 천문령의 승리, 패망을 딛고 세운 새로운 국가

高’ 깃발을 든 대조영이 군사들을 이끌고 천문령을 넘는 모습 / 이미지 출처: 작성자 직접 제작(AI 생성), 저작권 보유 © 2025

668년 고구려 멸망 이후, 대조영은 유민과 말갈 세력을 이끌고 698년 천문령에서 승리하여 동모산에 진국(震國)을 세웠습니다.(연호: 천통). 이후 국호는 발해(渤海)로 정착했고, 당의 발해군왕(713) 책봉을 통해 대외적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고구려 계승 의식은 ‘고(高)’ 성 사용과 제도 계승에서 분명히 드러나며,

이는 남쪽의 신라와 더불어 남북국 시대의 한 축을 이루었습니다.

서론|불굴의 의지로 발해를 세운 영웅, 대조영

안녕하세요, 여러분! '사람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사' 블로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한 민족의 멸망이라는 거대한 절망 속에서, 기적처럼 새로운 나라 발해(渤海)를 건국한 영웅, 고왕 대조영(大祚榮)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한 편의 영화처럼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배경|역사의 빈 페이지를 채운 인물

때는 7세기 말. 동아시아의 패자였던 고구려가 668년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때 그들의 웅장했던 수도는 폐허가 되었고, 수많은 고구려 유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당나라는 승자의 오만함으로 고구려 유민들을 당나라 곳곳으로 강제 이주시키며 그들의 혼을 꺾으려 했습니다.

마치 거대 기업이 경쟁사를 인수하고, 모든 직원을 해고한 뒤 핵심 인력만 골라 재배치하는 것과 비슷했죠.

 

이 혼란 속에서, 역사의 빈 페이지를 채울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대조영이었습니다.

사료로 본 출신 논쟁

대조영의 출생에 대한 기록은 놀라울 정도로 부족합니다. 마치 역사가 그의 탄생을 일부러 감추어둔 것처럼 말이죠.

다음 사료의 차이가 해석의 묘미를 남깁니다.

사료 요지 해석 포인트
《구당서》 “고구려 별종(高麗別種)” 고구려 계통성에 방점
《신당서》 “본래 속말말갈(粟末靺鞨)로서 고구려에 부속된 자” 말갈계 강조로 정통성 축소 시도 가능성

전환점|피와 땀으로 일군 승리와 건국

대조영의 고구려 시절 활약상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구려 멸망 후 수많은 유민을 이끌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뛰어난 군사적 능력과 탁월한 리더십을 인정받았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합니다.

 

마치 실적이 뛰어났지만 조직 내부에선 인정받지 못했던 직원이 회사를 떠나 새로운 성공 신화를 쓰는 것처럼 말이죠.

 

대조영은 말갈족 추장 걸사비우와 함께 당나라의 통제를 벗어나 동쪽으로 이동하는 대담한 결단을 내립니다.

이들의 행보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험준한 산맥을 넘어야 했고, 당나라의 끈질긴 추격대까지 따돌려야 했죠.

천문령 전투(698)|지형을 아군으로 만든 전술

마침내 698년, 오늘날의 길림성 돈화현 부근에서 최후의 결전이 벌어집니다. 바로 천문령 전투였습니다.

당나라 추격군은 산등성이를 가득 메운 채 압도적인 병력으로 이들을 포위했습니다.

그러나 대조영은 깎아지른 절벽과 깊은 계곡이라는 지형을 이용해 당군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마치 좁은 골목길로 적을 유인해 기습 공격을 감행하는 전략처럼 말이죠.

핵심 연표

668 고구려 멸망 → 698 천문령 승리·동모산 정착 → 진국 선포(연호: 천통) → 국호 발해 정착 → 713 당의 발해군왕 책봉

동모산의 선택과 국가 선포

이 승리를 계기로 대조영 세력은 동모산에 자리 잡고 새로운 나라 진국(震國)을 세웁니다.

스스로 고왕(高王)에 오르고,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정합니다. 이는 단순한 국가 건국이 아니었습니다.

 

고구려의 멸망이라는 거대한 실패를 딛고, 스스로의 힘으로 역사의 새로운 막을 올린 기적이었습니다.

명칭 안내 진국(초기 국호) → 점차 발해(渤海)로 정착. 본문에서는 독자 혼동을 피하기 위해 ‘발해’로 통칭하되, 건국 시점의 표기는 ‘진국’으로 병기합니다.

체제와 대외관계|고구려의 영광을 되살리다

대조영이 세운 발해는 고구려의 영광을 되살린 나라였습니다.

그는 고구려 유민을 핵심 지배층으로 삼아 나라를 운영했고, 피지배층인 말갈족을 통치했습니다.

 

이는 고구려의 사회 구조와 유사했으며, 발해가 고구려의 적통을 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발해는 당나라와 외교적 긴장 관계를 유지했지만, 713년 대조영이 ‘발해군왕’으로 책봉되면서 당도 발해를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게 됩니다.

이후 신라와는 고구려 멸망의 역사적 배경 때문에 갈등이 잦았지만, 일본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가며 외교적 균형을 맞추었습니다.

 

발해의 건국과 번영은 우리 역사에 남북국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신라가 한반도 남부를 통일한 후에도, 우리 민족의 역사는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의 《발해고》를 통해 재조명되었고, 오늘날에도 한국사에서 중요한 시대 구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의미와 교훈|리더십과 포용의 미덕

대조영의 위대함은 단순히 무력으로 나라를 세운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하나로 묶는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오늘날의 기업이나 조직에서도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대조영은 아마도 각자의 문화를 존중하고,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며 신뢰를 쌓아갔을 것입니다.

그의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이야말로 발해를 건국하고 발전시킨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의미|넘어진 자리가 꽃자리

대조영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넘어진 자리가 꽃자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고구려의 멸망이라는 거대한 실패와 좌절 속에서, 그는 그 절망을 새로운 시작점으로 삼았습니다.

흩어졌던 백성을 모으고, 혼란 속에서 질서를 세우며,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불확실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이 서사는 큰 울림을 줍니다.

독자 참여|나만의 역사 이야기

여러분은 대조영의 어떤 점이 가장 인상 깊으셨나요?

고구려 멸망 후 발해 건국은 단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굳건한 의지와 희망이 담긴 드라마가 아니었을까요?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눠주세요!

클릭하면 5문항이 열립니다. 각 문항의 ‘정답 보기/숨기기’ 버튼은 개별로 동작합니다.

1. [발해의 위치·별칭] 밑줄 친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문헌에 ‘해동성국’으로 불리며 신라·거란과 인접한 나라를 지칭한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고르시오.

  • ① 가야 연맹을 주도하며 철 생산과 중계무역으로 성장하였다.
  • ② 말·모피·인삼 무역이 활발했고, 일본과의 교류 기록이 풍부하다.
  • ③ 부여의 계승 국가로서 사출도(四出道) 체제를 유지하였다.
  • ④ 수도 개경을 중심으로 북진정책을 전개하였다.
출처: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2017학년도) — ‘해동성국, 신라·거란 인접’ 단서로 발해를 파악하는 유형. (요지 재구성)
정답: ②
발해의 교역 품목(말·모피·인삼)과 대외 교류는 빈출 포인트입니다. ‘해동성국’(동쪽의 융성한 나라), 신라·거란 인접 단서는 발해 지칭.

2. [건국·인물] 다음 설명에 해당하는 인물을 고르시오.

고구려 멸망 후 유민과 말갈 세력을 이끌고 천문령 전투의 승리를 계기로 동모산에 ‘진국’을 세웠다(후에 국호는 발해로 정착).

  • ① 장문휴
  • ② 대문예
  • ③ 대조영
  • ④ 이해고
출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초급 제24회(2014) — 대조영·동모산·건국 단서를 통해 인물을 식별하는 유형. (요지 재구성)
정답: ③
대조영은 698년 천문령 승리 후 동모산에 진국(연호 천통)을 선포, 이후 국호는 발해로 정착합니다.

3. [발해 정치·제도] 밑줄 친 ‘이 나라’의 정치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이 나라는 3성(중대성·문하성·상서성)과 6부 체제로 중앙 정치를 운영했고, 최고 관직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하였다.

  • ① 정당성의 장관인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하였다.
  • ② 중정대를 두어 관리 감찰 기능을 담당하게 했다.
  • ③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체계를 갖추었다.
  • ④ 지방관 감찰을 위해 외사정을 파견하였다.
출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기출(발해 제도 파트, 문왕기 정비) — 보기 ④ ‘외사정’은 신라 제도. (요지 재구성)
정답: ④
‘외사정’은 통일 신라의 지방 감찰관입니다. 발해는 정당성(대내상), 중정대(감찰), 주자감(유학 교육) 등이 포인트입니다.

4. [대외 관계·인식] 다음의 사료 해석으로 옳은 것은?

일본측 사료에는 발해 왕을 ‘고려국왕’으로 부르거나 발해 사신을 ‘고려의 사신’으로 표기한 사례가 다수 보인다.

  • ① 일본은 발해를 신라의 일부로 인식하여 ‘신라국왕’이라 표기하였다.
  • ② 일본은 발해를 고구려 계승국으로 인식하였음을 보여준다.
  • ③ 일본은 발해를 당나라의 지방정권으로 보았음을 뜻한다.
  • ④ 일본은 발해를 말갈의 독립 정권으로만 보았음을 뜻한다.
출처: 국가직 9급 한국사(2018)·한능검 심화 해설 자료 등 — 일본 사료의 호칭을 통해 고구려 계승 인식을 묻는 유형. (요지 재구성)
정답: ②
‘고려’는 고구려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일본 기록은 발해를 고구려의 후예로 인식했음을 보여줍니다.

5. [발해 왕의 업적 매칭] 다음 중 ‘문왕’의 업적으로만 묶인 것은?

  • ① 인안(仁安) 연호 사용, 등주 공격, 흑수 말갈 정벌
  • ② 상경 용천부로 천도, 3성 6부 정비, 주자감 설치
  • ③ 동모산 건국, 천통 연호 사용, ‘고’ 성 사용
  • ④ 대문예 파견, 대흥(大興) 연호 사용, 5경 15부 62주 정비
출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기출(발해 왕 업적 구분) — 무왕/문왕/대조영의 대표 업적 판별 유형. (요지 재구성)
정답: ②
문왕: 상경 용천부 천도, 3성 6부 정비, 주자감 설치 등 내치·제도 정비. 무왕: 인안·대흥(초기)/장문휴 등주 공격/흑수 말갈 관련. 대조영: 동모산 건국·천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