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

조선의 왈패, 상단주, 암행어사 — 지금 우리 사회의 그림자

solutionadmin 2025. 9. 21. 08:27

분노한 백성들이 악덕 상단주를 비난하는 모습 / 이미지 출처: 작성자 직접 제작(AI 생성), 저작권 보유 © 2025

조선 후기의 왈패, 상단주, 암행어사 이야기는 오늘날 범죄조직, 재벌, 내부 고발자와 겹칩니다. 권력·돈·정의가 충돌하는 모습은 시대를 넘어 반복되고 있죠.

사실 이번 글도 드라마 〈탁류〉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동안 블로그에서 여러 편에 걸쳐 <탁류>의 장면을 단서 삼아 조선 사회를 들여다봤는데요. 오늘은 그 연장선에서, 조선의 왈패(폭력 집단), 상단주(거상), 그리고 암행어사(정의 구현자)를 살펴보려 합니다.

조선의 왈패, 그때도 건달이 있었다

왈패. 생소한 단어지만, 쉽게 말하면 조선 시대의 조직폭력배쯤 됩니다. 시장이나 나루터에서 무리를 이루고 상인·백성을 괴롭히며 돈을 챙겼죠.

그런데 단순한 건달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지방의 권력자처럼 행세하기도 했고, 어떤 기록에는 “왈패 두목”이 사람들에게 은근히 선망의 대상이었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습니다. 마치 90년대 조폭 영화의 주인공이 ‘무섭지만 멋있다’고 소비되던 것과 비슷하죠.

저는 예전에 시장에서 “자리세를 안 내면 장사 못 했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 기억이 왈패 기록과 묘하게 겹쳤습니다. 역시 권력과 폭력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 것 같아요.

경강 상인과 상단주, 돈으로 세상을 움직이다

조선 후기 한강을 거점으로 활동한 경강 상인들. 그 리더가 바로 ‘상단주’였습니다. 쌀 운송, 배 운영, 숙소까지 장악하면서 엄청난 부를 쌓았죠.

정조는 이들의 독점적 지위가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백성의 생계 또한 고려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정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강선의 폐단 때문에 수천 포의 곡식을 잃을지언정, 어찌 수만 명의 경강민이 살아갈 길을 끊겠는가”(『정조실록』, 1789년 7월 10일)

하지만 거대한 부와 권력은 언제나 불씨를 품습니다. 1833년, 쌀값이 폭등하자 굶주린 백성들이 상인들의 창고를 습격했습니다. 『순조실록』에도 “경강 상인 김재순과 정종근이 쌀을 매점해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두 사람은 결국 처형당했죠.

  • 경강 상단: 한강 물류·운송의 핵심 주체
  • 상단주: 선박·창고·숙소 장악, 독점적 지위
  • 민심 악화: 1833년 쌀값 폭등과 창고 습격(매점·매석 논란)

관련 해설: 경강 상인 관련 글 보기

암행어사, 정의의 얼굴

그렇다면 백성 편에 선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암행어사 같은 청렴 관료들입니다.

실록에는 “암행어사가 상단주를 직접 처벌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박문수 전설 속에서는 시장의 불법 과세와 폭리를 조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건 흥미롭습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이미 “돈 가진 자 vs 정의의 사자” 구도가 각인되어 있었던 거죠.

요즘 뉴스에서 내부 고발자, 검찰, 감사원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문득 암행어사가 떠오릅니다. 물론 현실은 더 복잡하죠. 그럼에도 권력과 정의의 긴장관계, 그 뿌리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방의 민정이 문란하니 암행을 보내 살피게 하라.” — 『정조실록』(발췌)

결국 남는 건 같은 질문

왈패(폭력), 상단주(돈), 암행어사(정의). 세 힘이 부딪히던 조선 후기의 풍경은 지금 우리 사회와 겹쳐집니다.

오늘날 우리는 조직폭력배 대신 범죄조직, 상단주 대신 재벌, 암행어사 대신 내부 고발자와 검찰을 마주하고 있죠. 문제는, 이 구도가 몇백 년이 지나도 반복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만약 내가 조선 백성이었다면, 누구 편에 섰을까?” 폭력에 굴복했을까, 돈을 좇았을까, 아니면 정의를 믿었을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역사는 여전히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거죠.

👉 드라마 〈탁류〉가 그려낸 혼탁한 세상. 그 모습이 조선 후기의 권력 다툼과 겹쳐 보이고, 오늘의 현실과도 이어집니다. 역사는 책 속 먼지가 아니라, 지금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고 그 거울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얼굴까지도 보여주곤 합니다.

[Q1] (한능검 제10회 4급, 2010) 철종 때, 암행어사가 비밀 명을 받고 각 고을의 실정을 조사하여 왕에게 아뢴 상황으로 볼 때, 다음 중 당시 실정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은?

  1. 삼정의 문란이 극심하였다.
  2. 탐관오리의 횡포가 심하였다.
  3. 대부분의 서원이 철폐되고 있었다.
  4. 각지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정답: ③
서원 철폐는 주로 흥선 대원군 집권기 정책(1860년대)으로, 철종 대 실정 보고와는 직접적 관련이 약합니다. 출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10회 4급 37번.

[Q2] (국가직 9급, 2008) 조선 전기의 상업 활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 공인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2. 도성의 시전이 특정 품목 판매의 독점권을 보장받기도 했다.
  3. 개성의 송상·의주의 만상이 대외무역으로 대상인이 되었다.
  4. 경강상인이 경강을 중심으로 매점 활동을 통해 부유한 상업 자본가로 성장하였다.
정답: ②
시전의 금난전권 등은 전기에 해당합니다. ③·④는 조선 후기의 현상으로, 특히 경강상인과 매점·매석은 후기 상업 발달과 연관됩니다. 출처: 인사혁신처 국가직 9급(2008) 한국사 문3.

[Q3] (한능검 기출, 세도정치기) 다음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 “1862년 유계춘이 주도한 진주 봉기를 계기로 각지로 확산된 농민 항쟁”

  1. 지방관과 향리의 수탈이 원인이었다.
  2.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3. 삼정이정청 설치의 계기가 되었다.
  4. 농민 자치 기구인 집강소 운영으로 일단락되었다.
정답: ④
집강소 운영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의 특징입니다. 제시 사건은 1862년 임술 농민 봉기로, 정부는 암행어사 파견과 함께 삼정이정청을 설치했습니다. 출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출(임술 농민 봉기 문항).

[Q4] (한능검 기출, 상업사) 아래 시기 설명으로 적절한 것을 고르세요 — “항구가 국제 무역으로 번영하던 시기”

  1.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되었다.
  2. 경강상인이 포구를 근거지로 활동하였다.
  3. 서적점·다점 등 관영 상점이 설치되었다.
  4. 책문 후시에서 사무역이 이루어졌다.
정답: ③
지문은 고려의 국제항 벽란도 시기 설명입니다. ①·②·④는 조선 후기 특징(② 경강상인, ④ 책문 후시)입니다. 출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출(고려 경제·상업 문항).

※ 위 문항은 블로그 본문 주제(상단주·경강상인, 암행어사, 민란)와 직접 연결되는 기출만 선별했습니다. 각 문항의 난도·지문은 원전 형식을 유지하되 블로그용 4지선다로 재배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