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전체 글152

고려 복지의 시작, 흑창(黑倉) – 단순한 창고가 아니었다! 고려 복지의 시작, 흑창(黑倉) – 단순한 창고가 아니었다!안녕하세요,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사’ 블로거입니다.오늘은 고려시대의 독특한 복지 제도인 흑창(黑倉)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여러분은 우리 역사 속 복지 제도의 시작이 언제라고 생각하시나요?많은 분이 고구려의 진대법(賑貸法)을 떠올리실 텐데요. 가난한 백성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나중에 갚게 한 진대법은 동아시아에서도 선구적인 복지 정책으로 평가받습니다.고려의 태조 왕건은 이 정신을 계승하여, 흑창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복지의 씨앗을 틔웠습니다.❖ 흑창이란 무엇인가?흑창은 ‘검은 창고’라는 뜻으로, 국가가 주관하여 설치한 곡식 보관 창고입니다.가장 굶주리는 봄철 보릿고개에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 수확기에 이자 없이 .. 2025. 8. 10.
사림의 칼끝은 안쪽을 향했다 – 남곤의 좌익 회군 미수 사건 ⬥사림의 칼끝은 안쪽을 향했다 – 남곤의 좌익 회군 미수 사건⬥안녕하세요,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사’ 전문 블로거입니다. 오늘은 조선 중종 시대, 기묘사화 이후 혼란한 정국 속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건, 남곤의 좌익 회군 미수 사건을 소개합니다. 이 사건은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당시 권력 다툼과 사림의 분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마치 역사 선생님이 들려주듯, 그 진실을 하나씩 풀어가 보겠습니다.✦남곤과 기묘사화 이후, 왜 칼을 빼려 했는가? ⚔✦1519년, 조광조를 필두로 한 신진 사림 세력이 훈구파의 공격으로 숙청당한 기묘사화는 조선 정치사의 중대 전환점이었습니다. 당시 남곤과 심정은 이 사화의 주도 세력이었고, 사건 이후 권력의 중심에 올라섰습니다.그러나 권력은 늘 불.. 2025. 8. 10.
잊힌 총성과 터지지 못한 폭탄들: 안중근 이후 국내 의거 실패자들의 기록되지 않은 항일사 잊힌 총성과 터지지 못한 폭탄들: 안중근 이후 국내 의거 실패자들의 기록되지 않은 항일사안녕하세요,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사’ 블로거 여러분.오늘은 우리가 잘 아는 영웅,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서 출발하여, 끝내 성공하지 못해 역사의 그림자에 묻힌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로 시선을 넓혀보려 합니다.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 울려 퍼진 총성은 단순한 세 발의 방아쇠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일제 침략에 맞선 조국 독립의 외침이자, 이후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나도 안중근처럼!”이라는 용기를 심어준 신호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역사의 주인공이 된 이는 극히 일부였습니다. 대부분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사라졌고, 교과서 한 줄조차 허락받지 못한 이름 없는 투사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 .. 2025. 8. 10.
불화살을 넘어선 불의 힘 - 진포대첩과 최무선 화포 개발의 서사 불화살을 넘어선 불의 힘 - 진포대첩과 최무선 화포 개발의 서사1. 왜구의 그림자, 고려의 바다를 뒤덮다: 최무선과 진포대첩, 화포 개발의 서막고려 말, 우리 바다는 평화와는 거리가 먼 전쟁터였습니다. 왜구(倭寇)라 불리는 일본 해적들이 금강, 낙동강 등지로 끊임없이 침입해 마을을 약탈하고 백성들을 위협했죠. 육지에서는 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고려도 왜구의 기습적인 해상 공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이 위기의 시기, 최무선(崔茂宣)이라는 인물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그는 평범한 관리였지만, 나라를 구하겠다는 사명감으로 ‘불의 무기’, 즉 화약(火藥)과 화포(火砲)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당시 화약 제조법은 중국에서만 은밀히 다루던 최첨단 비밀 기술이었기에, 이를 독자적으로 개발한다는 것 자체가 ‘.. 2025. 8. 9.
위화도 회군 그 이전의 진실: 최영과 이성계의 갈등이 빚어낸 역사적 전환점 위화도 회군 그 이전의 진실: 최영과 이성계의 갈등이 빚어낸 역사적 전환점안녕하세요,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사’ 블로거입니다.오늘은 고려 말 역사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꾼 ‘위화도 회군’의 배경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흔히 이성계의 전략적 판단으로 평가되는 이 사건은, 사실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정치적 갈등과 두 영웅의 가치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고려의 마지막 충신 vs. 신흥 권력의 선두주자최영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부친의 유훈처럼 청렴하고 충절을 지킨 고려 무장이었습니다. 오직 왕실과 백성을 위한 정치를 지향하며, 무너져가는 고려 왕조를 다시 세우고자 했습니다.반면 이성계는 왜구와 홍건적을 물리친 전공으로 부상한 신흥 무장으로, 낡은 체제에 회의를 품고 새로운 국가 질서를 구.. 2025. 8. 9.
원 간섭기 고려 왕실의 비애 – 충선왕 시대의 권력 투쟁 원 간섭기 고려 왕실의 비애 – 충선왕 시대의 권력 투쟁몽골의 그림자, 원 간섭기 고려의 운명여러분, 혹시 '원 간섭기'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몽골 제국이 동아시아를 지배하던 13~14세기, 고려도 그 강대한 힘 아래 놓이게 된 아픈 시기를 일컫습니다. 거대한 그림자처럼, 고려는 자주성을 빼앗기고 원나라의 직접적인 지배와 간섭을 받았죠.왕들은 원 황실의 사위가 되어야 했고, 이름 앞에 '충(忠)'자가 붙어 원에 대한 충성을 강요받았습니다.오늘 이야기할 '충선왕' 역시 이런 시대의 산물이었습니다.❖ 겉은 화려하나 속은 슬픈, 고려 왕실의 현실이 시기 고려 왕실은 겉으로 보기엔 화려했지만, 실상은 참담했습니다. 왕위는 원나라 황실의 의지에 따라 결정됐고, 왕실 내부에선 권력을 쟁취하려는 다툼이 끊이지 않았.. 2025. 8. 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