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33 잊힌 영웅, 걸사비우: 발해 건국의 숨은 불씨 질문으로 시작하는 역사“발해를 세운 사람, 누구라고 알고 계세요?”대부분 이렇게 대답하실 겁니다. 대조영!맞습니다. 발해의 시조는 대조영이죠. 하지만 교과서에 잘 나오지 않는 또 한 명의 주역이 있습니다.바로 **속말말갈의 지도자, 걸사비우(乞四比羽)**입니다. 그는 왕이 되지도 않았고, 이름조차 희미하게 남았습니다.그런데도 그는 발해라는 나라의 불씨가 되었죠. 여러분, 왜 걸사비우는 역사에서 잊혔을까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를 다시 불러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당시 시대 상황은 각자도생이 아닌 연대를 필요로 하였습니다668년, 고구려가 멸망합니다.수많은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 세력이 당나라의 감시 아래 **영주(營州)**로 이주되지요. 영주에서의 삶은 고달팠습니다.강제 노동, 끊임없는 징발, 군사.. 2025. 9. 14. 대조영과 발해 건국: 천문령의 승리, 패망을 딛고 세운 새로운 국가 대조영과 발해 건국: 천문령의 승리, 패망을 딛고 세운 새로운 국가高’ 깃발을 든 대조영이 군사들을 이끌고 천문령을 넘는 모습 / 이미지 출처: 작성자 직접 제작(AI 생성), 저작권 보유 © 2025668년 고구려 멸망 이후, 대조영은 유민과 말갈 세력을 이끌고 698년 천문령에서 승리하여 동모산에 진국(震國)을 세웠습니다.(연호: 천통). 이후 국호는 발해(渤海)로 정착했고, 당의 발해군왕(713) 책봉을 통해 대외적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고구려 계승 의식은 ‘고(高)’ 성 사용과 제도 계승에서 분명히 드러나며,이는 남쪽의 신라와 더불어 남북국 시대의 한 축을 이루었습니다.서론|불굴의 의지로 발해를 세운 영웅, 대조영안녕하세요, 여러분! '사람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사' 블로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25. 9. 13. 고구려 우씨 왕후의 두 번 결혼, 형사취수제는 과연 일반적인 풍습이었을까? 안녕하세요, 역사 블로그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사'의 독자 여러분!오늘은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방송을 계기로 고구려의 흥미로운 결혼 풍습, 특히 형사취수제와 서옥제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이 드라마는 고국천왕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왕위를 노리는 왕자들과 권력을 잡으려는 다섯 부족의 표적이 된 우씨 왕후가 24시간 안에 새로운 왕을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그중에서도 고국천왕의 왕후였던 우씨 왕후가 동생인 산상왕과 재혼한 사건을 중심으로, 과연 고구려 사회에서 이러한 풍습이 보편적이었는지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우희 역을 맡은 전종서와 을파소 역을 맡은 김무열의 연기력이 드라마의 몰입도를 한층 높일 것으로 기대됩니다. 전종서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우씨 왕후 역을.. 2025. 8. 30. 철의 왕국 가야, 진흥왕의 정복으로 막을 내리다 철의 왕국 가야, 진흥왕의 정복으로 막을 내리다 안녕하세요!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사’ 블로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오늘은 한반도 남부를 호령했던 ‘철의 왕국’ 가야가 어떻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보려 해요.가야를 멸망시킨 주인공인 신라 진흥왕의 정복 활동과, 그 과정에서 남겨진 가야의 문화적 유산을 중심으로 알아볼게요.마치 역사 교실에서 선생님이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나 보시죠!❖ 가야는 왜 '철의 왕국'이었을까요?가야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철입니다.낙동강 유역에는 철광석이 풍부했고, 이를 바탕으로 가야는 뛰어난 철기 문화를 발전시켰어요.가야의 철은 중국, 일본까지 수출되었죠.이처럼 철을 통해 얻은 경제력이 곧 가야의 힘.. 2025. 8. 22. 무령왕의 외교적 시련, 왜왕과의 갈등이 낳은 내부 반란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무령왕의 외교적 시련, 왜왕과의 갈등이 낳은 내부 반란백제는 한성(漢城)을 고구려에 빼앗기고 수도를 웅진(공주)으로 옮긴 뒤, 국가 존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왕권은 땅에 떨어지고 귀족 세력은 분열과 다툼을 일삼으며 나라의 기틀을 흔들었지요. 이처럼 혼란한 상황에서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인물이 바로 제25대 국왕 무령왕(재위 501~523년)이었습니다. 1971년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과 그 속 유물들은 그의 위상을 증명해 줍니다. 그러나 무령왕의 즉위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무령왕의 전임자인 동성왕은 왕권 강화를 위해 귀족 세력을 제어하려 했지만, 결국 귀족 백가(苩加)의 칼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동성왕을 시해한 백가는 스스로 왕위에 오르려 했으나, 무.. 2025. 8. 18. 고구려 부흥의 첫 시도 안승과 신라의 복잡한 셈법 고구려 부흥의 첫 시도 안승과 신라의 복잡한 셈법고구려 부흥군 지도자 안승을 재현한 상상도 — 출처: 작성자 직접 제작(AI 생성) · 저작권 보유 © 2025멸망의 비극, 그 후 꺼지지 않은 염원천 년 넘게 동북아시아의 강자로 군림했던 고구려는 668년,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군에 의해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고구려 유민들의 가슴 속에는 무너진 나라를 다시 일으키고자 하는 뜨거운 염원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안승(安勝)은 그 염원을 실현하려 했던 첫 번째 인물로 기록됩니다. 과연 그는 누구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고구려 부흥의 깃발을 들었을까요?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부흥 운동을 넘어, 당시 동아시아 국제 관계의 복잡한 속내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2025. 8. 17. 이전 1 2 3 4 ···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