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대하사극 〈문무〉를 계기로 문무왕·연개소문·김춘추와 매소성·기벌포 전투를 역사 기록과 함께 정리하며, 신라 삼국 통일의 의미를 다시 짚어보는 글입니다.
KBS 대하사극 〈문무〉, 왜 다시 ‘문무왕과 삼국 통일’을 꺼냈을까?
드라마보다 한 발 먼저 보는 인물과 시대 이야기
요즘 한국사 드라마를 보다 보면 조선 후기, 고려 말 이야기는 자주 만나지만, 문무왕과 삼국 통일기 전체를 정면에서 다루는 작품은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 가운데 KBS가 2026년 하반기 방영을 목표로 대하사극 〈문무(文武)〉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무왕 김법민과 연개소문, 김춘추, 고건무가 뒤엉켜 있던 격동의 7세기 동아시아를 다시 꺼내 들겠다는 것이지요.
오늘 글에서는 “왜 지금 다시 문무왕과 삼국 통일인가?”, 그리고 “드라마에 등장할 인물과 시대는 어떤 모습이었나?”를 기록에 따라 먼저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드라마 〈문무〉에서는 문무왕 김법민 역에 이현욱, 연개소문 역에 장혁, 김춘추 역에 김강우, 신라 조정의 실력자 김진주 역에 정웅인, 영류왕 고건무 역에 조성하 배우가 캐스팅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 배우들이 연기할 인물들이 역사 기록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KBS가 다시 대하사극을 꺼낸 이유
제작발표회에서 KBS는 〈문무〉를 두고 “대하사극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라고 강조했습니다.
수신료 통합징수법이 본격 시행되는 시기에, 수신료로 만드는 첫 대형 시리즈로 〈문무〉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공영방송 이미지 회복과 책임 있는 역사 콘텐츠 제작을 동시에 노리는 시도로 보입니다.
제작진은 또
- “역사 왜곡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고증을 챙겼다”,
- “학생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시험을 봐도 다 맞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
고 밝혔습니다. 최근 사극마다 역사 왜곡 논란이 한 번씩은 지나가는 상황을 의식해, ‘정확한 고증’과 ‘공적 책임’을 전면에 내세운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짚어볼 부분은 사료(기록)의 편향입니다. 예를 들어 연개소문 평가는 『구당서』·『신당서』 같은 당나라 기록과, 『삼국사기』 같은 신라 쪽 기록의 시각이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연개소문은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이야기할 때에는 기록을 남긴 쪽의 입장 차이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문무왕과 나당전쟁도 신라와 당, 두 쪽의 기록을 나란히 놓고 보아야 훨씬 입체적인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몽골 현지 촬영, 실사 기반 CG, AI 활용 전투 장면 등을 예고했지만, 감독은 결국 “핵심은 AI보다 배우”라고 말하며 사람이 연기하는 역사에 더 무게를 두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2. 왜 하필 ‘문무왕과 삼국 통일’인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문무왕의 이미지는 대개 한 줄입니다.
신라의 제30대 왕, 삼국 통일을 완성한 왕.
하지만 그 한 줄만으로는 이 인물의 역할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문무왕은 아버지 김춘추(태종 무열왕)가 만들어 놓은 외교·동맹의 틀 위에서 나당전쟁을 끝까지 버티며 승리해, 당군을 한반도에서 물러나게 만든 왕입니다.
말 그대로
통일을 형식적으로 마무리한 왕
이 아니라, 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나당 동맹’을 스스로 정리하고, 신라 주도의 ‘자주적 통일’ 구조를 굳힌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당전쟁을 조금 더 크게 보면, 단순히 “동맹이 깨졌다”는 사건이 아니라 당이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넓히려 한 흐름 속에서 벌어진 충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삼국 통일을 볼 때 “자주냐, 종속이냐”라는 단순한 이분법만으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습니다. 당·신라·고구려·백제가 얽힌 복합적인 국제 정세의 결과로 보는 시각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드라마는 바로 이런 지점, 신라가 그저 “고구려 땅을 빼앗은 나라”였는지, 아니면 치열한 전쟁과 외교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든 주체였는지를 다시 묻는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3. 드라마 속 주요 인물, 기록에서는 어떻게 보였나?
1) 문무왕 김법민 – 통일 완성자이자 나당전쟁의 승리자
드라마 〈문무〉에서 이현욱 배우가 연기할 문무왕 김법민은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아들이며, 백제 멸망 이후에도 계속된 나당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통일을 ‘자주적으로’ 완성한 왕입니다.
- 매소성 전투, 기벌포 전투를 통해 당군을 물리치고,
- 이후 당과의 관계를 재조정하여 신라 중심의 질서를 만들어 냅니다.
드라마에서는 “자존심과 배짱이 있으면서도 나라를 위해 치욕을 견디는 인물”로 그려진다고 하는데, 이는 곧 ‘외교·전쟁·내치’ 세 영역을 모두 감당해야 했던 통일기의 얼굴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문무왕과 나당전쟁을 이해할 때에는 신라와 당, 두 쪽의 기록을 교차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쪽 기록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승리의 이야기”와 “미묘한 긴장 관계”가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2) 연개소문 – 국력을 끌어올린 영웅인가, 내부를 뒤흔든 폭풍인가
연개소문은 고구려 말기의 대막리지로, 국가의 군사·정치를 손에 쥔 실질적 최고 권력자였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장혁 배우가 이 연개소문을 연기할 예정입니다.
- 강력한 군사력과 카리스마로 국력을 끌어올린 인물이지만,
- 동시에 정변을 일으켜 왕을 교체하고 대외 정책을 급격히 바꾸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변으로 왕을 바꾸고 대외 관계를 돌려 세웠지만, 그로 인해 고구려 내부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당의 개입 명분을 제공했다
고 보는 평가도 존재합니다.
즉, 연개소문은 외부에서는 강력한 방파제였지만, 내부적으로는 거대한 폭풍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도 사료의 편향이 작용합니다. 그를 적대시했던 당나라 기록과, 그를 두렵게 보았을 수도 있는 신라·후대 사가의 시각이 섞여 있어, “강한 지도자냐, 무리한 권신이냐”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연구와 토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3) 김춘추 – 외교로 판을 바꾼 설계자
김춘추(태종 무열왕)는 신라 최초의 진골 왕이자, 통일 전략의 설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김강우 배우가 이 김춘추를 연기합니다.
- 딸과 사위를 백제에 잃는 비극을 겪었지만,
- 고구려·백제·당 사이를 오가며 외교전을 벌였고,
- 훗날 백제와 고구려 멸망, 신라의 입지 강화로 이어지는 길을 닦았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냉철한 외교가이지만 개인적 상처를 안고 있는 인물”로 그려질 예정이라 하니, 오늘날 리더십과 외교를 떠올리며 볼 수 있는 인물상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4) 고건무(영류왕) – 강대국 틈새에서 버티던 군주
고건무, 즉 영류왕은 당·신라·백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했던 고구려의 왕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조성하 배우가 이 영류왕을 맡습니다.
- 대외적으로는 강대국의 체면을 지켜야 했고,
- 내부적으로는 연개소문이라는 강력한 권신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영류왕과 연개소문의 갈등은 단순히 두 사람 성격의 문제라기보다, 고구려가 어느 쪽으로 대외 노선을 잡을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정책·노선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고구려 멸망 역시 연개소문의 정변 한 가지 요인만으로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귀족 세력 간 갈등, 당·신라와의 힘 관계 변화, 내부 경제·사회 문제 등이 겹쳐 나타난 결과라는 점도 함께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5) 김진주 – 신라 조정의 숨은 실력자
드라마 〈문무〉에서 정웅인 배우가 연기하는 김진주는, 사람들에게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신라 조정의 실세로 설정된 인물입니다.
기존 기록에서 같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가공 인물 또는 변형된 캐릭터를 통해 당시 신라 조정 내부의 권력 구도를 드라마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김진주라는 인물 자체보다는, “신라 조정의 실력자”라는 설정이 시사하는 통일기 신라의 권력 구조에 주목해 보게 됩니다.
4. 매소성과 기벌포 – 나당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두 전투
이 블로그에서는 앞으로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를 따로 떼어 해설하는 글도 준비해 볼 생각입니다.
간단히만 짚어 보면,
- 매소성 전투는 육지에서 벌어진 전투로, 신라가 산악 지형을 활용해 당군을 차단하고 한반도 내 육상 전선에서의 우위를 확보한 결정타였습니다. 매소성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이것 역시 “어디에서 어떻게 공격·방어했는가”를 둘러싼 연구와 해석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기벌포 전투는 해상 전투로, 금강 하구 일대로 추정되는 복잡한 물길과 갯벌 지형이 전투의 승패에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한 지역으로 평가됩니다. 당이 산둥반도에서 황해를 건너 백강·금강으로 진입하려 했다는 점을 보면, 신라가 바다를 통한 보급로를 차단하는 전략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전투는 단순한 승전이 아니라, 신라가 육상과 해상에서 당의 보급로를 동시에 끊어 냈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가 매우 큽니다.
7세기 전쟁은 오늘날처럼 공중전·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 지형과 교통망에 크게 좌우된 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소성은 육상 전선의 요충지로, 기벌포는 해상 전선의 요충지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부분은 후속 글에서 지도를 곁들여 좀 더 자세히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5. 삼국 통일 이후, 고구려 유민과 발해까지
신라의 삼국 통일은 한반도 남부 기준의 이야기입니다. 고구려 유민의 길은 그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
삼국 통일 이후 고구려 유민 일부는 신라에 편입되어 새로운 신라인으로 살아가게 되었지만, 또 다른 일부는 북쪽으로 이동해 발해 건국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어 냅니다.
즉, 한반도 남쪽에서는 신라 중심의 통일 국가가 세워졌고, 북방에서는 고구려 계승을 자처한 발해가 등장하면서 동아시아 북·남 이중 구조가 형성됩니다.
이렇게 보면 “삼국 통일”은 한반도 전체 역사의 끝이 아니라,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더 가깝게 보입니다.
6. 왕과 장군만의 전쟁이 아니었다는 점
문무왕의 전쟁은 왕과 장군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징발된 평민 병사들의 삶이 깊이 얽힌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논밭에서 일하다가, 누군가는 어촌에서 그물을 던지다가 전쟁터로 끌려갔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시대 사람이라면, 이 전쟁을 “통일의 영광”으로만 받아들였을지, 아니면 가족과 생계를 끊어놓은 고통으로 느꼈을지, 잠시 상상해 보게 됩니다.
7. 이 블로그에서 앞으로 다룰 이야기들
〈문무〉가 실제로 방영되기 전이든, 방영이 시작된 뒤든 역사의 기본 골격은 이미 기록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앞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차례로 정리해 볼 계획입니다.
- 문무왕 김법민 인물편: 나당전쟁과 해중릉(문무대왕릉) 이야기
- 연개소문 인물편: 정변, 대외 정책, 고구려 멸망과의 관계
- 김춘추 인물편: 외교 전략과 신라 왕권 강화
- 매소성·기벌포 전투 해설: 지도를 곁들인 전투 전개 정리
- “왜 신라가 통일했는가?” 종합편: 세 나라의 정치 구조와 동아시아 정세 비교
그 뒤에는 드라마 〈문무〉가 실제로 어떤 장면을 보여주는지 확인하면서, 드라마 내용과 역사 기록을 차분히 비교해 보는 글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어느 부분이 기록과 같고, 어디부터는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졌는지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마무리
개인적으로는, 문무왕처럼 그동안 교과서에서 한 줄로만 지나갔던 인물이 다시 대하사극의 중심에 서게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움을 느낍니다.
사극은 결국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를 계기로 우리가 기록 속 인물과 사건을 다시 읽어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출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글이 〈문무〉를 기다리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미리 보는 역사 안내서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문무왕, 연개소문, 매소성·기벌포 전투 이야기도 천천히 함께 살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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