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1(2026.01.06) 보도에 따르면 영화 〈칼, 고두막한의 검〉은 고구려 멸망 2년 후를 배경으로 전설의 검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립니다. 사실과 상징의 경계를 역사 맥락에서 정리합니다.
[영화와 역사] 박보검 ‘칼, 고두막한의 검’—고구려 멸망 2년 후, 기록과 전설 사이
고구려의 멸망(668년)은 역사책에서 한 줄로 정리되지만, 그 다음 장면은 유난히 빠르게 지나갑니다. 나라가 무너진 뒤 2년. 그때 사람들은 무엇을 붙잡고 살아남았을까요? 저는 오히려 그 “멸망 이후의 시간”이 더 아프고, 더 궁금하게 느껴집니다.
최근 뉴스1(2026.01.06) 보도에 따르면, 김한민 감독의 신작 영화 〈칼, 고두막한의 검〉은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여기서는 보도된 설정을 바탕으로 한 ‘역사 읽기’에 초점을 맞춰 보겠습니다.
1) 배경: “고구려 멸망 2년 후”는 실제로 어떤 시대였나
영화의 시점으로 알려진 670년 전후는 ‘끝난 역사’가 아니라,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사람들의 시간입니다.
평양성이 무너진 뒤, 유민들의 길은 요동·만주로, 신라로, 혹은 당나라로 끌려가거나 편입되는 방향으로 갈라지며 그 혼란이 일상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고구려 유민은 완전히 소멸하듯 흩어진 게 아니라, 곳곳으로 갈라져 이동하면서도 다시 결집을 시도했고, 실제로 부흥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만 더 짚어두면, 670년 전후는 유민 사회의 움직임만으로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당이 한반도 지배를 굳히려는 시도와, 그에 맞서는 신라의 긴장이 본격화되면서 ‘다음 라운드’가 시작되는 국면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민의 선택과 부흥의 시도 역시 이 큰 힘의 충돌 속에서 더 복잡해졌다고 보입니다.
아래 타임라인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 정리된 자료를 바탕으로 핵심만 요약한 것입니다. (부흥운동의 큰 흐름은 삼국사기 등 정사 계열과 백과사전식 정리 자료를 참고해 정리했습니다.)
- 668년: 고구려 멸망
- 670년 전후: 유민 세력이 결집해 부흥운동 전개(검모잠 등)
- 같은 시기: 안승을 ‘왕’으로 세우는 흐름이 나타남
- 이후: 내부 갈등과 주변 세력(당·신라)의 이해관계가 겹치며 급격히 흔들림
- 결과적으로: 부흥운동은 좌절·재편을 반복
- 그리고: 북방으로 이어지는 다른 길(발해 등)로 역사의 흐름이 연결됨
검모잠은 고구려 유민 세력을 규합해 부흥을 추진한 인물로 자주 언급되고, 안승은 유민이 세운 ‘왕’이라는 상징을 통해 부흥운동의 정치적 구심점이 됩니다.[자세한 흐름은 제가 정리한 "'고구려 부흥의 첫시도 안승과 신라의 복잡한 셈법" 포스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 시대의 핵심은 “전쟁이 끝났는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포기했는가”입니다. 영화가 이 시점을 고른 이유가 여기에서 설득력을 얻습니다.
2) ‘고두막한’은 누구인가: 정사(正史)와 전설(傳說)의 경계
이 작품의 가장 강한 훅은 제목 속 이름, ‘고두막한(高豆莫汗)’입니다. 다만 여기서부터는 재미만큼 사실과 해석의 경계를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고두막한’은 주류 정사에서 실존 인물로 확인되기 어렵고, 일부 문헌(환단고기 계열)에서 전설적 존재로 서술되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구분 | 내용 |
|---|---|
| 확인되는 것(사료 기반) | 670년 전후 고구려 유민 부흥운동이 전개되었고, 검모잠·안승 등의 인물과 사건 흐름이 정리되어 있음 |
| 확인이 어려운 것(논쟁 영역) | ‘고두막한’이 고구려 멸망 직후 실존 인물로 활동했다는 직접 근거는 정사에서 확인이 어려움 |
| 영화적 해석(독자에게 필요한 관점) | ‘고두막한’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상징(정신적 뿌리·부흥의 기억)으로 차용된 모티브일 가능성이 큼 |
그리고 중요한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역사학계에서 위서 논란이 큰 자료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체로 공인 역사 서술(정사·주류 연구)에서는 이런 전설 계열 서술을 사료로 적극 채택하지 않거나, 신화·전설 범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 이름은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보다, 영화가 전설과 상징을 빌려 시대의 감정을 그리는 장치로 이해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3) 김한민 감독 + 박보검: “역사 재현”이 아니라 “역사 정서”의 영화?
김한민 감독은 전작에서 고증과 스케일을 강점으로 보여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결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실존 인물을 ‘재현’하기보다, 역사의 공백을 상상력으로 메우는 방식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비가 하나 생깁니다. 이순신 시리즈가 ‘실존 영웅의 고뇌’를 정면으로 밀고 갔다면, 이번 작품은 정사에 빈틈이 남은 시간 속에서 ‘잊혀진 자들의 전설’을 불러내는 쪽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사실 맞히기’보다는, 멸망 이후를 우리는 어떤 감정으로 기억하는가를 묻는 방식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큽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 〈칼, 고두막한의 검〉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해집니다. 요동으로 향할지, 신라에 편입될지, 당의 통치권 안으로 들어갈지—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이 가장 ‘살 길’로 느껴졌을까요?
보도된 설정처럼 “기억을 잃은 무사”가 등장한다면, 이 인물은 한 사람이라기보다 고구려 유민 전체의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 기억을 잃었다 = 뿌리가 흔들린 시대
- 검을 찾는다 = 정체성을 다시 붙잡으려는 시대
이 구조는 역사 콘텐츠로도 꽤 강력한 장치입니다.
맺으며: 멸망 이후를 기억하는 또 다른 방식
고구려는 멸망으로 끝났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멸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칼, 고두막한의 검〉이 건드리는 지점은 아마 그 감정—기록이 다 담지 못한 상실과 부흥의 간절함—일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는 역사를 사실로만 기억해야 할까요, 아니면 사실 위에 남은 감정까지 함께 기억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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