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 드라마 소개
- 홍은조는 실존 인물일까
- 조선의 의적들 — 법보다 정의를 택한 사람들
- 조선 이전에도 의적은 있었다
- 고려의 김사미·효심 — 한국 최초의 의적
- 그리고 조선에서, 의적은 완성되었다
- 덧붙이는 생각 — 오늘의 의적은 누구인가
내년 1월 3일, KBS가 새로 선보이는 판타지 사극 《은애하는 도적님아》가 방송된다고 합니다.
배우 남지현과 문상민이 주연을 맡았고, ‘천하제일 도적이 된 여인과 그녀를 쫓던 대군의 영혼이 뒤바뀌며 벌어지는 위험한 사랑’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남지현이 연기하는 홍은조는 양반 아버지와 노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신분의 벽에 갇힌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가난한 병자들을 돕던 그녀는 어느 날 부패한 부자들의 곳간을 털게 됩니다. 도둑이 된 이유는 단 하나, “누군가는 굶주린 사람을 살려야 하니까.”
그녀의 도적질은 탐욕이 아니라, 정의를 향한 몸부림이었습니다.
홍은조는 실존 인물일까
드라마 속 ‘홍은조(洪恩祚)’는 실존 인물은 아닙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동국통감, 연려실기술 어디에도 그 이름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물에게서 묘한 현실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홍은조는 조선의 의적 전통—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으로 이어지는 ‘정의로운 도적’의 서사를 여성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실제 역사 속 의적들이 실천하고자 했던 ‘사회 정의’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부패한 권력에 맞서 약자를 돕는 그 정신은 시대를 넘어 반복되어 온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조선의 의적들 — 법보다 정의를 택한 사람들
조선의 의적들은 법을 어겼지만, 결국 백성을 위해 싸운 사람들로 기억됩니다.
홍길동은 신분의 벽을 깨고 ‘율도국’을 세워 평등을 외쳤고,
임꺽정은 탐관오리의 재산을 빼앗아 민중에게 나누며 ‘조선의 로빈 후드’로 불렸습니다.
장길산은 지략과 조직력으로 부패한 관리를 비웃었고, 민중의 마음속에서 ‘정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법의 틀을 넘어섰지만, 그 행동의 방향은 언제나 공의(公義)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을 죄인으로 기억하지 않고, 불의한 시대를 바로잡은 영웅으로 떠올립니다.
조선 이전에도 의적은 있었다
‘의적’이라는 단어가 조선에서 비로소 정착했지만, 그 정신의 뿌리는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국사기」에는 “백성이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도적이 되었다(民不堪賦而爲盜)”는 기록이 자주 보입니다. 즉, 백성들이 과도한 세금과 부역을 견디지 못해 도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을 뿐, 아직 ‘정의로운 자각’은 없었습니다. 그 시대의 중심 가치가 ‘충(忠)’과 ‘효(孝)’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의 혹은 의적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했거나 기록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고려의 김사미·효심 — 한국 최초의 의적
고려시대에 들어서야 ‘법을 어기지만 불의에 저항하는 자’가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사미(金似未)와 효심(孝心)입니다.
1193년, 경상도 일대에서 일어난 두 사람의 봉기는 단순한 폭동이 아니었습니다. 부패한 권력에 대한 도덕적 반란이었죠.
그들은 탐관오리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었고, 「고려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성이 따랐으나 탐욕이 없었다”(無貪).
저는 이 한 문장에서 ‘무탐(無貪)’보다 ‘백성이 따랐다’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두려움이 아닌 존경이 따랐던 행동, 그것이 바로 의적의 자격일지도 모릅니다. 현대 학자들은 김사미와 효심을 “한국 최초의 의적형 인물”로 평가합니다. 또한 도적은 아니지만 개경의 노비 만적(萬積)은 “천한 자도 임금이 될 수 있다”며 신분의 벽을 거부했습니다. 그의 반란은 실패했지만, 그 정신은 이후 민중 의식의 불씨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조선에서, 의적은 완성되었다
삼국의 도적은 생존의 상징, 고려의 의적은 정의의 싹, 그리고 조선의 의적은 그 싹이 피운 꽃이었습니다.
홍길동이 문학 속에서 이상사회를 꿈꾸고, 임꺽정과 장길산이 현실에서 부패한 질서를 무너뜨렸듯, 드라마 《은애하는 도적님아》의 홍은조는 그 전통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인물입니다.
덧붙이는 생각 — 오늘의 의적은 누구인가
의적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는 그들의 ‘정의로운 면모’뿐 아니라 그 이면의 그림자도 함께 봐야 합니다. 불의한 권력에 맞섰던 그들의 행동이 때로는 또 다른 피해를 낳기도 했으니까요. 의적의 서사는 언제나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에도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불의에 맞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익제보자, 환경운동가, 시민단체 활동가들….
그들은 제도의 울타리 안에서 양심으로 세상을 바꾸려 합니다. 이 시대의 ‘의적’은 더 이상 칼을 들지 않습니다. 대신 펜과 용기로 싸우죠.
그래서 역사의 의적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이런 질문이 남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정의를 선택하고 있는가.”
여러분이라면 어떤 정의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댓글로 함께 이야기 나눠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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