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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과 광대, 그리고 창작된 인물 공길 연산군과 광대 공길, 그는 실존했을까? 《연산군일기》 속 단 한 줄 기록과 영화·드라마 속 창작 캐릭터의 차이를 통해 향락 정치의 교훈을 살펴봅니다.영화 속 공길, 사 속 실존?혹시 영화 〈왕의 남자〉 보신 분 계신가요?또 요즘 뜨거운 인기 드라마 〈폭군의 셰프〉를 보고 계신다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인물이 있을 겁니다.바로 연산군 곁에서 노래하고 춤추던 광대 공길이죠.섬세한 외모, 뛰어난 재능, 왕의 총애까지. 그런데,여기서 잠깐!《연산군일기》를 아무리 뒤져봐도 공길이라는 이름은 단 한 번 등장합니다.정말 놀랍지 않나요? 그 기록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연산군일기》 속 공길연산군일기 11년 12월 29일(1505년)원문 (한자본) “優人 孔吉, 作老儒戲曰: ‘殿下爲 堯、舜 之君, 我爲 皋陶 之臣。 堯、舜.. 2025. 9. 15.
잊힌 영웅, 걸사비우: 발해 건국의 숨은 불씨 질문으로 시작하는 역사“발해를 세운 사람, 누구라고 알고 계세요?”대부분 이렇게 대답하실 겁니다. 대조영!맞습니다. 발해의 시조는 대조영이죠. 하지만 교과서에 잘 나오지 않는 또 한 명의 주역이 있습니다.바로 **속말말갈의 지도자, 걸사비우(乞四比羽)**입니다. 그는 왕이 되지도 않았고, 이름조차 희미하게 남았습니다.그런데도 그는 발해라는 나라의 불씨가 되었죠. 여러분, 왜 걸사비우는 역사에서 잊혔을까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를 다시 불러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당시 시대 상황은 각자도생이 아닌 연대를 필요로 하였습니다668년, 고구려가 멸망합니다.수많은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 세력이 당나라의 감시 아래 **영주(營州)**로 이주되지요. 영주에서의 삶은 고달팠습니다.강제 노동, 끊임없는 징발, 군사.. 2025. 9. 14.
대조영과 발해 건국: 천문령의 승리, 패망을 딛고 세운 새로운 국가 대조영과 발해 건국: 천문령의 승리, 패망을 딛고 세운 새로운 국가高’ 깃발을 든 대조영이 군사들을 이끌고 천문령을 넘는 모습 / 이미지 출처: 작성자 직접 제작(AI 생성), 저작권 보유 © 2025668년 고구려 멸망 이후, 대조영은 유민과 말갈 세력을 이끌고 698년 천문령에서 승리하여 동모산에 진국(震國)을 세웠습니다.(연호: 천통). 이후 국호는 발해(渤海)로 정착했고, 당의 발해군왕(713) 책봉을 통해 대외적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고구려 계승 의식은 ‘고(高)’ 성 사용과 제도 계승에서 분명히 드러나며,이는 남쪽의 신라와 더불어 남북국 시대의 한 축을 이루었습니다.서론|불굴의 의지로 발해를 세운 영웅, 대조영안녕하세요, 여러분! '사람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사' 블로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25. 9. 13.
기황후: 공녀로 시작해 원 제국의 정후(正后)에 오르다 본문 바로가기기황후: 공녀로 시작해 원 제국의 정후(正后)에 오르다목차굴욕적인 시작: '공녀'라는 운명과 입궁 경로권력의 계단: 제2황후에서 정후까지고려에 미친 영향: 공(功)과 과(過)역사적 의의와 우리의 질문사건 연표 (요약)한 줄 비교표안녕하세요! '사람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사' 블로그 지기입니다.오늘은 고려 후기, 한 평범한 여성이 어떻게 거대한 제국의 황후 자리에 오르고, 두 나라의 역사를 뒤흔들었는지 그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바로 기황후의 삶입니다. 혹시 "기황후"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아마도 권력을 향한 야망, 그리고 고향 고려를 배신한 비운의 여인이라는 복잡한 이미지가 아닐까 싶어요.오늘은 그녀가 걸었던 그 길을 따라가며,"그녀는 어떻게 금기를 깼는가?", "그.. 2025. 9. 12.
폭군 연산군의 ‘엔터테인먼트’ 사랑, 주지육림의 현장 본문 바로가기목차사건(인물) 개요발생 배경과 시대 상황전개 과정사료 기록야사·이설과 그 진위결과와 의의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오늘날의 의미관련 장소·유적·기념관 소개마무리사건 요약 비교표사건 연표독자 참여 코너폭군 연산군의 ‘엔터테인먼트’ 사랑, 주지육림의 현장사건(인물) 개요연산군(1476~1506, 재위 1494~1506)은 조선의 제10대 왕으로,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군주로 손꼽힙니다.그의 통치는 화려한 향락과 무분별한 정치 탄압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궁궐을 하나의 거대한 유흥장으로 바꾸어 버린 인물입니다. 흔히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이미지는 오늘날까지도 뚜렷합니다.발생 배경과 시대 상황성종 사후, 어린 나이에 즉위한 연산군은 태생적 불안감을 안고 있었습니다... 2025. 9. 11.
사림과 훈구의 격돌, 연산군 시대의 서막 /> 사림과 훈구의 격돌, 연산군 시대의 서막훈구와 사림, 두 산맥의 충돌조선 전기의 정치 무대에는 두 개의 거대한 산맥이 있었습니다. 바로 훈구파와 사림파입니다. 훈구는 말 그대로 “공훈 있는 신하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를 때 공을 세운 무리들이었죠. 이들은 권력을 쥐고 막대한 토지를 차지하며, 왕실과 혼인 관계로 얽히면서 기득권의 철옹성을 쌓았습니다. → 비유하자면, 재벌가와 정치를 함께 잡은 구세대 엘리트 집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사림은 숲속에 은둔한 선비들. 지방에서 학문을 닦던 신진 세력으로, 성리학적 도덕과 이상 정치를 내세웠습니다. → “원칙은 목숨처럼 지켜야 한다”는 젊은 개혁파, 요즘식으로 말하면 “청년 정치인+스타트업” 같은 이미지였죠. 두 집단은 처음부터 권력의.. 2025.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