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조선말기, 왕의 망명과 그 의미: 고종의 아관파천
여러분, 혹시 ‘왕의 도망’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나라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임금이 궁궐을 떠나 외국 공사관으로 몸을 피했다면 믿기시겠습니까?
오늘은 바로 그 믿기 어려운 사건, 조선 제26대 왕 고종의 아관파천(俄館播遷)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896년, 격동의 구한말 조선. 과연 고종은 왜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었을까요?
격변의 조선말기, 왕의 망명과 그 의미: 고종의 아관파천
⬥ 고종은 왜 궁궐을 떠났을까?
19세기 말, 조선은 제국주의 열강 사이에서 휘청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청일전쟁(1894~1895)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일본은 조선 내정에 대대적으로 개입하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개혁을 밀어붙였죠. 이에 강하게 반발하던 명성황후는 일본의 최대 걸림돌이 되었고, 1895년 10월 8일,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무참히 시해한 사건, 바로 을미사변이 발생합니다.
이후 고종은 사실상 감시와 위협 속에 유폐된 생활을 하게 되었고, 자신의 생명조차 위태로운 상황에서 탈출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가 눈을 돌린 곳은 바로 조선에 주재 중이던 러시아 공사관이었습니다. 일본 세력을 견제하고자 하던 러시아 측은 고종에게 비밀리에 협조하였고, 마침내 한밤중의 대탈출이 감행됩니다.
❖ 비밀리에 단행된 아관파천
1896년 2월 11일 새벽, 고종은 상궁의 가마에 몸을 숨긴 채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합니다. 이 사건이 바로 ‘아관파천’입니다. '아관'은 러시아 공사관, '파천'은 임금이 궁궐을 떠나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긴다는 의미입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게 되자 정국은 급변했습니다. 친일 내각이 해체되고 친러 계열이 정권을 장악했으며, 단발령 철회 및 을미개혁 중단, 친일 인물 처벌 등 여러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격변의 조선말기, 고종의 아관파천 과정 이미지
❖ 소문과 진실 사이: 아관파천에 대한 오해들
✦ 고종이 인력거를 타고 도망갔다?
민간에는 고종이 인력거를 타고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퍼졌지만, 실제로는 상궁용 가마에 탑승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당시 여성 가마는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설계되어 병사들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전해지며, 이는 민심의 충격이 낳은 과장된 소문으로 보입니다.
✦ 도망이 아닌 전략적 선택이었다?
일각에서는 고종의 선택을 비겁한 도피가 아닌, 일본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 즉 외교적 계산이 담긴 전략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아관파천 이후 조선은 잠시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며 외교적 숨통을 틀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열강인 러시아의 간섭을 자초하며 조선이 더 깊은 국제 각축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 아관파천의 역사적 의미
⬥ 조선의 자주권 상실을 상징하다
고종이 외국 공사관으로 피신해야 했던 현실은 조선의 주권이 무너져 가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후 조선은 러시아·일본의 각축장이 되었고, 결국 러일전쟁 후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 대한제국 선포의 배경이 되다
고종은 약 1년 뒤 덕수궁으로 환궁하며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합니다. 이는 조선이 국제 사회에서 독립 국가임을 천명하기 위한 자구책이자, 아관파천 이후 형성된 반일·친러 정세의 산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 ‘왕의 나약함’이 아닌 시대의 고뇌를 드러내다
교과서에서는 종종 고종의 도피만을 강조하지만, 아관파천은 조선이 얼마나 국제 정세에 휘둘리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고종의 선택은 약소국의 군주로서 살아남기 위한 고뇌였으며, 이는 단순히 ‘나약함’으로 폄하할 수 없습니다.
❖ 아관파천의 흔적을 찾아서
✦ 구 러시아 공사관 (서울 정동)
고종이 실제로 1년간 머물렀던 곳으로, 현재는 일부 건축물과 탑이 남아 있습니다. 서울 도심에서 아관파천의 현장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입니다.
✦ 덕수궁 (서울 중구 세종대로)
고종이 돌아와 대한제국을 선포한 곳으로, 오늘날까지도 고종의 자주독립 의지를 상징하는 역사적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 콘텐츠 속 아관파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등에서는 아관파천 전후의 시대적 혼란과 인물들의 갈등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집니다.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가 됩니다.
고종의 아관파천은 단순한 ‘왕의 도망’이 아닌, 조선이라는 나라가 국제 정세 속에서 생존을 위해 내딛은 절박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역사의 겉면뿐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인간적인 고뇌와 민족의 처절한 생존 의지를 함께 바라보아야 합니다. 역사는 과거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성찰의 거울이 됩니다.
고종의 아관파천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