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 강에는 달이 흐른다 속 사형 장면의 ‘망나니’는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회자수와 행형쇄장, 그리고 백정과 망나니의 관계를 기록과 사례로 정리해 봅니다.

드라마 한 장면에서 시작된 질문
드라마 이 강에는 달이 흐른다에서 여주인공 가족이 사형대로 끌려가고,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그 장면을 지켜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군중속에 누군가 울음이 터질 듯 말 듯 하고, 시간은 이상할 만큼 천천히 흐르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집행자가 칼을 드는 순간, 공포는 칼날보다 “언제, 어떻게 끝나는가”라는 기다림에서 더 커집니다.
그 장면을 보며 이런 질문이 들었습니다. 조선시대 실제 사형 집행자, 우리가 ‘망나니’라고 부르는 그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요.
먼저 한 줄 단서, 일반화는 조심해서
다만 사형 집행의 운영은 조선 전기·후기, 중앙·지방, 관서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아래 내용은 널리 알려진 제도 설명과 사례 소개를 바탕으로 정리한 ‘대표적인 구조’로 이해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공간을 한 줌만 떠올려 보면
사형장은 대개 ‘한쪽에서 벌어지는 일’을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구조였습니다. 군졸이 동선을 막고, 관원이 절차를 확인하고, 구경꾼의 숨죽임이 바닥에 깔립니다.
드라마가 주는 공포도 결국 이 군중과 질서,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동선에서 커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1분 요약 박스: 용어 관계를 한 번에 정리
아래 상자만 기억하면, 글이 훨씬 쉽게 읽힙니다.
용어 1분 정리
- 망나니: 대중적으로 사형 집행자를 부르는 말(통칭)
- 회자수: 참수 등 사형을 집행하는 역할(집행자)로 소개되는 명칭
- 쇄장: 옥(감옥) 실무와 잡역에 가까운 일을 맡는 인력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있음
- 행형쇄장: 그중 형(사형) 집행을 맡는 쇄장으로 소개됨
- 백정/도살업자: ‘항상 집행자’라기보다, 예외 상황에서 칼 쓰는 기술자로 동원되었다는 이야기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음
조선의 ‘망나니’는 직업이 아니라 역할
우리가 흔히 망나니라고 부르는 사형 집행자는 회자수(劊子手)로도 불립니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현대처럼 ‘고정된 직업인’으로만 굳어져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역사넷 ‘사형’ 항목은 망나니라 불린 회자수(劊子手)가 두건 형태의 모자(회건)를 써 다른 관리들과 복장이 구분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김화진의 『한국의 풍토와 인물』을 인용해 회자수가 주로 사형수 가운데 선발되었고, 집행일에 술과 밥을 주어 “한밥 먹는다”는 속담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합니다.
드라마 속 집행자가 하나의 고정된 신분집단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는 역할과 선발 방식이 더 복잡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단칼의 값은 고통을 줄여 달라는 부탁
사형수와 가족이 바라는 것은 대개 하나입니다. 가능하면 빨리, 가능하면 덜 고통스럽게 끝나는 것. 그런데 이 절박함이 현장에서는 거래로 흐르기도 했습니다.
동아일보 연재 ‘조선의 잡史’(2018-01-29)는 사형수가 뇌물을 주지 않으면 고통스럽게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소개하면서, 1545년 을사사화로 처형을 앞둔 윤준(尹浚)에게 망나니가 돈을 요구했고 거부하자 더 참혹하게 죽였다는 취지의 일화를 전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극적인 잔혹함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형 집행이 제도 밖의 ‘현장 거래’로 흔들리면, 사형장은 공포와 부패가 함께 자라기 쉬운 장소가 됩니다.
낙인의 구조: 필요한 일을 떠넘기는 사회
같은 사건도 실록 같은 1차 기록에서는 건조하게 남고, 후대 교양서나 칼럼에서는 현장 심리와 주변 맥락을 덧붙여 재구성되기도 합니다. 그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한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사회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일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그 일을 맡은 사람에게는 낙인을 남기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백정이 망나니였다? 예외가 만든 오해
인터넷에서는 “망나니는 백정이 했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백정이 했다”로 단정하면 부정확합니다.
기본 축은 따로 있습니다. 실록위키 ‘쇄장’ 설명에 따르면, 쇄장은 잡역 담당 성격이었고 그중 형 집행을 맡는 이가 행형쇄장으로 불렸습니다. 또한 전옥서 소속 행형쇄장은 사형수 가운데 자원자를 정하는 방식이 언급되며, 이런 선발 방식이 이어졌다는 설명도 보입니다.
다만 예외 상황이 있었습니다. 동아일보 ‘조선의 잡史’ 연재에서는 숙종 때 행형쇄장을 사형수 중에서 선발했다는 수교 내용을 소개하면서, 집행자가 죄책감이나 두려움 때문에 형 집행을 거부한 사례, 그리고 그때 도살업자를 불러 억지로 집행했다는 취지의 서술을 함께 전합니다.
이 두 갈래를 합치면 정리가 가능합니다. 집행자는 회자수·행형쇄장 같은 역할로 불렸고, 때로는 사형수 가운데에서 선발되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다만 집행이 막히는 경우 도살업자 같은 칼 쓰는 기술자가 동원된 사례도 전합니다. 그래서 망나니를 곧바로 백정으로 단정하는 말은 조심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낙인은 남았다
조선의 집행자는 사회가 필요로 하면서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역할을 떠안았습니다. 오늘날은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소득이나 직업 이미지로 사람을 낮춰 보는 시선은 남아 있습니다.
환경미화, 장례·돌봄, 감정노동처럼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 어느 순간 하대의 이유가 되는 순간, 우리는 조선의 낙인을 다른 얼굴로 되풀이하는 셈입니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일을 ‘필요하지만 낮은 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말과 시선으로 벌주고 있지는 않은가.
맺는말
드라마의 사형 장면은 극적이지만, 기록 속 사형은 더 차갑고 구조적입니다. 누가 칼을 쥐었는지를 따져보는 일은 한 사회가 “필요한 일을 누구에게 떠넘기고, 그 사람을 어떻게 대우했는가”를 묻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이 장면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오늘 우리가 무심코 매기는 ‘사람값’의 기준은 무엇인지, 댓글로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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