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4년 실록의 ‘책장 바꾸기’가 뜻하는 족보 조작 방식을 추정하고, 군역·신분 욕망과 오늘의 문서감정을 잇는다.
이 글은 앞글과 이어집니다.
조선의 족보, 그 거대한 질서의 자격증 : 성화보부터 실록 속 조작 사건까지
앞글에서 저는 영조 40년(1764) 실록에 등장하는 보첩 조작 사건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실록의 표현은 단순히 위조했다가 아니라, 묘하게 구체적입니다. ‘책장을 바꾸어 준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장 바꾸기’는 실제로 어떤 방식이었을까요. 그리고 그 부탁은 누구에게서, 어떤 마음에서 시작됐을까요.
1. 실록의 한 줄, 왜 ‘책장’이 문제였을까
실록 기록의 핵심은 대략 이렇게 잡힙니다. 여러 보첩을 모아오고, 군역을 피하려는 사람들을 유인해, 이름을 적고 책장을 바꾸어 주며 이익을 챙겼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실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책장을 바꾸어 주고…”
이 짧은 표현 하나가, 단순 필사 오류가 아니라 책의 일부를 손대는 방식이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합니다. 다만 번역문에서 말하는 ‘책장’이 오늘날 감각의 쪽(페이지)인지, 혹은 기록 관행상 낱장에 가까운 단위를 가리키는지는 확인 방식에 따라 그림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실록이 던지는 힌트를 바탕으로, 현실적으로 가능했던 조작의 형태를 추정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2. 정말 페이지를 갈아 끼웠을까: 가능한 방식 3가지
조선 후기 보첩은 문중이 간행하기도 하고, 필사로 돌려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후대에 보완하거나 덧붙이는 관행이 섞일 수 있어, 물리적으로 장을 바꾸거나 끼워 넣는 상상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실록의 표현이 ‘책장’인 것도 그래서 의미심장합니다.
여기서 책의 물성을 잠깐만 붙여두면, 이 상상이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조선 후기 책은 종이를 접어 묶고 실로 꿰매는 방식이 흔했습니다. 한 번 꿰맨 책이라도 낱장을 교체하거나 덧대는 편법이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았고, 이런 점이 ‘책장을 바꾼다’는 표현을 더 현실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물론 종이 결이나 지질, 먹색의 미묘한 차이는 오히려 들통의 단서가 되기도 했겠지요.
| 위조 방식(추정) | 핵심 기술 | 필요한 조건(현실적 전제) | 취약점(들통 포인트) |
|---|---|---|---|
| 새 장 끼워 넣기 | 특정 대·파 페이지를 새로 작성해 삽입 | 항렬·표기 습관·서술체를 원본처럼 맞춤 | 앞뒤 흐름 불일치, 항렬·관직 기재 어색함 |
| 덧대어 수정하기 | 기존 장 위에 덧쓰기·가리기·부분 교체 | 종이·먹·필체의 자연스러운 연결 | 덧댄 흔적, 먹 번짐·색 차이, 문장 리듬의 이질감 |
| 편집 및 재구성 | 여러 보첩을 비교해 형식·정보를 조합 | 참고할 보첩 확보, 문서 유통·인맥 | 집안 고유 관행과 충돌, 내부 기억과 대조 시 취약 |
표만 보고 지나치기 쉬우니, 결론을 문장으로도 한 번 더 정리해 두겠습니다. 첫째, 가장 그럴듯한 방식은 새 장을 만들어 끼워 넣는 것이지만, 항렬과 표기 습관을 맞추는 게 관건입니다. 둘째, 덧대어 고치는 방식은 흔적이 남기 쉬워, 종이와 먹색 차이가 약점이 됩니다. 셋째, 여러 보첩을 조합하는 편집 방식은 맞춤형 결과물을 만들 수 있지만, 결국 그 집안의 습관에서 걸릴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조작을 어디서 가장 먼저 의심하겠습니까. 종이 결일까요, 먹색일까요, 아니면 항렬의 미세한 어긋남일까요.
3. 왜 하필 군역이 함께 등장했을까: 족보와 호적이 맞물리는 지점
앞글에서도 짚었듯, 족보는 문중 내부 문서이지만 때로는 사회적 신분과 체면, 관계망의 증거처럼 작동했습니다. 호적이 국가 행정 장부라면, 족보는 지역 사회에서 사람의 위치를 규정하는 평판의 문서에 가까웠던 순간이 있었던 셈입니다.
여기에서 군역이 끼어드는 이유가 선명해집니다. 당시 사회 인식에서 양반 신분은 군역 부담과 관련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위로 여겨질 여지가 있었고, 그 유리함이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족보에 이름이 오른다’는 기대가 단지 체면이 아니라, 군역이나 군포 같은 현실 부담을 덜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절박함과도 맞닿아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시점도 의미가 있습니다. 영조 대에는 군역 부담을 조정하려는 제도 개편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부담의 체감이 지역과 계층에 따라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틈에서 ‘이름 한 줄’이 현실의 무게를 바꿀 수 있다는 유혹이, 1764년 같은 시점에 더 절박하게 작동했을 가능성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4. 조작은 누가 했을까요
그렇다면 그 조작을 ‘해준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실록이 말하는 ‘책장 바꾸기’는 단순한 사기가 아니라, 책의 구조를 아는 사람이 손을 대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보첩은 문중이 간행하기도 했지만, 필사본이 돌고 보완이 이어지면서 ‘책을 다루는 기술’이 통하는 세계가 있었습니다. 종이를 구하고, 글씨를 맞추고, 먹빛을 비슷하게 내고, 때로는 책심(실꿰매기)을 건드려 낱장을 끼우는 일까지. 이 과정은 곧 시간과 손기술이 드는 노동이었고,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돈이 되는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조작을 맡아주는 쪽은 대개 ‘문서의 길’을 아는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관아의 서리처럼 장부를 다루던 사람, 책쾌처럼 필사본과 인쇄물을 유통하던 사람, 혹은 글씨와 편집에 능한 필사자. 이들이 한데 모이는 곳에서는 종이와 책이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거래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실록이 “여러 보첩을 모아오게 하고”라는 표현을 남긴 것도, 이 일이 혼자서 즉흥적으로 벌어지기보다, 참고할 자료를 확보하고 맞춤형으로 손보는 ‘작업’에 가까웠음을 암시합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조작이 ‘얼마나 널리’ 퍼졌는가를 단정하기보다, 적어도 일부에서는 국가 기록에 보고될 만큼 현실 문제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족보는 문중의 책이었지만,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면 ‘손을 대면 바뀔 수 있는 문서’가 되기도 했다는 것을요.
5. 왜 이런 일이 구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었을까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이 일을 개인의 일탈로만 돌리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군역 부담이 누구에게 더 무겁게 체감되었는지, 신분 질서가 현실의 기회와 의무를 어떻게 갈랐는지에 따라 문서에 기대고 싶은 마음도 커졌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작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들어가고 싶어 하는 울타리와 빠져나오고 싶은 부담이 동시에 존재했던 구조의 그림자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구조가 흔들릴수록, 누군가는 문서로 자신을 끌어올리고 싶어졌고, 누군가는 그 욕망을 거래로 바꿀 방법을 찾았겠지요.
6. 그럼 어떻게 들통났을까: 옛날의 ‘검증’은 무엇이었나
요청이 있었고, 기술이 있었다면, 결국 독자는 이렇게 묻게 됩니다. 그런데 왜 들통났을까.
실록이 한 사건을 기록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검증의 작동을 뜻합니다. 그 검증은 현대처럼 정밀감정만으로 이뤄지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방식이 더 강력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 문중 내부의 기억: 그 집안에 정말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누구의 항렬인지, 어느 묘역과 연결되는지. 지역 사회의 기억은 때로 종이보다 집요합니다.
- 형식의 불일치: 항렬·표기·관직 기재 방식이 어긋나면, 보는 사람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위조가 가장 어려운 지점이 바로 그 집안의 습관입니다.
- 다른 장부와의 충돌: 족보는 문중 문서지만, 호적·군적 등 다른 장부와 어긋나면 의심이 커질 수 있습니다.
즉, 옛날의 적발은 한 방의 과학기술이라기보다, 기억과 형식, 장부가 맞부딪히는 과정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7. 오늘날에도 문서 위조는 있다: 다만 목적이 바뀌었을 뿐
실록의 ‘책장 바꾸기’가 오늘 우리에게 생생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문서 위조가 과거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 위조의 동기가 신분 상승과 의무 회피에 가까웠다면, 오늘의 위조는 경제적 이익과 법적 책임 회피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대출, 계약, 부동산 거래, 보험, 채권·채무 분쟁처럼 문서 한 장이 돈이 되는 곳에서 유혹이 생깁니다.
또 한편으로, 의무를 피하기 위해 문서를 손대려는 유혹도 형태만 바뀌어 남아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병역 의무를 면하려는 목적으로 의료기록을 조작하거나 허위 진단을 시도하는 일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대에는 문서감정이라는 전문 영역이 발달했습니다. 필적, 인영, 종이와 잉크의 특성, 출력·복사 흔적 등을 분석해 진정성을 따지는 감정 절차가 수사기관의 과학수사 영역이나 민간 문서감정의 형태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형사사건·민사소송 등에서 문서의 진정성립·위조 여부가 쟁점이 될 때, 문서감정 결과가 중요한 증거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결국 시대가 바뀌어도 본질은 남습니다. 문서가 곧 자격이 되고, 때로는 의무와 이익까지 좌우한다고 믿는 순간, 위조의 유혹도 함께 생깁니다.
맺음말: 실록의 ‘책장’이 던지는 질문
‘책장 바꾸기’라는 표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조선 후기에는 사람의 이름이 종이 위에서 바뀌는 순간, 혼인과 대우, 의무와 기회까지 흔들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록의 단어 하나가 무겁게 읽힙니다.
다음 글에서는 ‘책장 바꾸기’가 실제로 어떤 흔적을 남기기 쉬웠는지, 예를 들어 항렬·관직 표기의 미묘한 어긋남, 종이·먹색의 차이, 문장 리듬 같은 단서를 함께 살펴볼 예정입니다. 옛날의 눈으로 문서를 보고, 오늘의 기술로 문서를 다시 보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참고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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