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지도를 만들면 정말 역모가 되었을까요. 드라마 〈탁류〉 속 지도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김정호와 대동여지도, 그리고 일제가 남긴 식민사관의 그림자까지 함께 보이기 시작합니다.

조선에서 지도를 만들면 역모였을까? 〈탁류〉가 놓친 식민사관의 그림자
이 글은 드라마 〈탁류〉 속 지도 서사를 다루는 시리즈 글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체 흐름과 다른 글들은
《[드라마 <탁류>로 읽는 임진왜란 이후 세상: 경강상인·치안·민생·활패·지도 제작 논쟁까지 한눈에 보는 시대 가이드]》에서 한눈에 보실 수 있습니다.
〈탁류〉를 처음 보았을 때 저는 안개 속 한강을 떠올렸습니다. 강 위를 미끄러지듯 오가는 배마다 사람들의 욕망과 두려움이 얽혀 흐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 중심에 유난히 강하게 박혀 있는 설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도를 만들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 지도 제작은 곧 역모라는 서사였습니다.
그 순간 마음속에 작은 질문이 생겼습니다. 정말 조선에서는 지도를 그리면 죄인이 되었을까.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드라마를 넘어 20세기 초 식민지 조선의 교실까지 시선이 이어졌습니다.
1. 드라마 속 갈등 구조와 지도 서사
〈탁류〉에서 지도는 이야기 전체를 흔드는 핵심 장치입니다. 대호군과 거상 최정엽은 조선을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명분 아래 은밀히 대형 지도를 제작합니다. 반대로 오 대감과 포도청 종사관 이돌개는 이를 역모의 증거로 규정하고 가차 없이 탄압합니다. 지도를 둘러싼 밀고와 추격, 배신과 피살이 이어지고, 결국 수많은 인물이 지도를 지키려다 목숨을 잃습니다.
드라마 안에서 지도는 희망이자 금기이면서, 동시에 미래와 죽음의 경계에 놓인 물건이 됩니다. 서사 구조만 보자면 매우 극적이고 흡인력 있는 설정입니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지도를 두려워했고, 지도를 만든 사람을 쉽게 역적으로 몰았다는 전제입니다. 과연 이 전제는 역사적 사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을까요.
2. 김정호 탄압설의 출처, 일제 교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가 흥선대원군에게 미움을 받아 옥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조선 후기의 사료와 기록 어디에도 이런 내용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김정호의 이름은 여러 문헌에 보이지만, 탄압과 옥사에 대한 직접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진 데에는 뚜렷한 출처가 있습니다. 바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만든 보통학교 역사 교과서입니다. 일본은 조선을 스스로 근대화할 능력이 없는 미개한 나라로 보이게 만들기 위해, 조선의 지식인과 기술이 탄압받았다는 식의 서사를 의도적으로 배치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김정호 탄압설이었습니다.
교과서의 구조를 따라가 보면,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조선에서는 지도를 만들면 역모로 몰렸고, 김정호 역시 그 희생양이었다. 반면 일본은 근대 지리를 도입해 조선의 실상을 파악하고 근대화를 도왔다. 이 이야기는 결국 조선의 주체성을 지우고, 일본의 식민 지배를 근대화의 이름으로 포장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3. 실제 조선의 지도 제작과 김정호, 그리고 신헌
실제 조선의 모습은 이와 사뭇 달랐습니다. 조선 후기 지도 제작은 학자와 관료, 기술자들이 함께 참여한 중요한 국가 사업이었습니다. 영조 이후 군사 방비와 행정 운영을 위해 전국 지도를 정비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대대적인 지리지 편찬과 지도 제작이 이루어졌습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는 기존 군현 지도와 관청 자료를 수집하고, 직접 전국을 답사하며 지형과 도로, 하천을 정리했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아도 압도적인 수준의 축척과 정보량을 가진 이 지도는, 한 개인의 취미를 넘어선 거대한 지적 작업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한 사람 더 있습니다. 바로 신헌입니다. 신헌은 금위영대장과 승지, 형조·병조·공조판서를 두루 거친 고위 관료로, 흥선대원군 집권기 핵심 실세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문집 〈신대장군집〉에는 자신이 규장각과 비변사에 비치된 여러 국가 지도와 군사 지도를 김정호에게 열람시키고, 지도 제작을 도왔다는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만약 지도 제작이 곧 역모라면, 최고 권력층이 국가 기밀 지도를 민간 지도 제작자에게 보여주고 협력했다는 사실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 기록은 김정호의 작업이 국가적 필요와 맞닿아 있었고, 고위 관료들의 묵인과 지원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조선이 지도를 두려워했다기보다, 지도 제작을 중요한 행정 인프라로 인식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4. 〈탁류〉가 비춰 준 무의식의 그림자
이렇게 보면 〈탁류〉의 “지도 제작=역모” 설정은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드라마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극적 긴장감을 위해 허구를 덧씌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문제는 이 설정의 뿌리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점입니다. 김정호 탄압설을 비롯해 “조선은 지도를 만들면 잡아갔다”는 통념은, 상당 부분 일제 교과서가 만들어 낸 이미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조선상의 일부는, 사실 식민지기의 시선이 남긴 잔상은 아닐까. 〈탁류〉의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식민사관을 따랐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그들이 선택한 서사 중 일부는 이미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오래된 이야기 틀을 자연스럽게 따라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두 겹의 강물을 보여 줍니다. 화면 속 혼탁한 한강과 더불어, 20세기 초 식민지 교실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의 강물이 겹쳐 흐르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그 두 강물이 뒤섞인 지점을 의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5. 결론, 탁류를 더 깊게 보기 위한 작은 렌즈
〈탁류〉는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 시대 배경과 메시지 면에서 뛰어난 작품입니다. 다만 “지도를 만들면 역모”라는 설정만큼은, 조선의 실제 역사와 일제강점기가 남긴 통념 사이에서 한 번 더 점검해 볼 부분으로 남습니다. 이 비평은 작품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작은 렌즈로 읽혀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조선에서는 지도를 만들면 잡아갔다면서요. 김정호도 그렇게 죽었다던데요.” 이제 우리는 차분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그건 주로 일제 교과서에서 퍼져 나온 이야기이고, 실제 조선의 지도 제작사는 훨씬 더 복잡하고 흥미로운 역사였다고 말입니다.
드라마 〈탁류〉가 던진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한강 위의 혼탁한 물결 너머로 또 하나의 강이 보입니다. 식민지기의 시선이 남긴 이야기의 강입니다. 이 두 강물을 함께 바라보는 일,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역사 드라마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조선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살아남아야 했다: 임진왜란 이후, 전쟁기 조선 여성들의 선택과 생존 전략 (1) | 2025.11.29 |
|---|---|
| 조선 여성은 집에만 있었다?‘빨래터-주막-장터’로 보는 역사를 움직인 그녀들의 보이지 않는 경제력 (1) | 2025.11.28 |
| 드라마 〈탁류〉로 읽는 임진왜란 이후 세상:경강상인·치안·민생·왈패·지도 제작 논쟁까지 한눈에 보는 시대 가이드 (0) | 2025.11.26 |
| 열녀문, 미담인가 압박인가: 조선의 열녀문 제도와 오늘의 시사점 (0) | 2025.11.24 |
| 드라마 〈탁류〉로 다시 보는 임진왜란 이후, 민초의 삶과 한강 상인의 세계 (0) | 2025.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