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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살아남아야 했다: 임진왜란 이후, 전쟁기 조선 여성들의 선택과 생존 전략

by solutionadmin 2025.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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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 마을에서 생계를 위해 바삐 오가는 조선 여성들의 하루 모습 / 출처: 작성자 직접 제작(AI 생성), 저작권 보유 © 2025

 

임진왜란 이후 살아남아야 했던 조선 여성들의 피난, 생계 노동, 정절 담론을 디즈니+ 사극 〈탁류〉와 함께 따라가 보며 전쟁의 뒤편에 숨은 일상의 얼굴을 비춰 봅니다.

 

이 글은 디즈니+ 사극 〈탁류〉를 통해 임진왜란 이후 조선 사회를 다시 보는 연재의 한 편입니다. 시리즈 전체 흐름과 다른 글들은 《드라마 〈탁류〉로 읽는 임진왜란 이후 세상·경강상인·치안·민생·왈패·지도 제작 논쟁까지 한눈에 보는 시대 가이드》에서 한눈에 보실 수 있습니다.

살아남아야 했다: 임진왜란 이후, 전쟁기 조선 여성들의 선택과 생존 전략

— 드라마 〈탁류〉와 함께 읽는 한 장면

전쟁 이야기는 보통 장군 이름, 전투 이름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저는 전쟁을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얼굴이 따로 있습니다. 집에 남겨져 남편과 아들을 기다리던 아낙, 아이를 끌어안고 산으로 피난 가던 엄마, 장터에서 흥정을 하며 겨우그럭저럭 하루 벌이를 이어가던 딸들. 이름도 남지 않은 여성들입니다.

디즈니+ 오리지널 사극 〈탁류〉는 조선 시대 상업 중심지인 경강, 한강 나루 부근을 배경으로 한 액션 드라마라고 소개됩니다. 다만 이 드라마의 분위기는 임진왜란 직후보다는, 전쟁을 겪은 뒤 상업이 더 활발해진 조선 후기 경강을 떠올리게 합니다. 경강, 지금의 서울 한강 마포나루 일대를 떠올려 보면 강을 오르내리는 배와 상인들, 나루를 지나는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먼저 떠오릅니다. 상단을 이끄는 딸 ‘최은’은 여성이라는 한계를 뚫고 상단의 운명과 외교적 교섭까지 주도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 소개는 위키백과 내용을 참고했습니다.

혼탁한 강물 위를 오가는 배, 그 곁에서 물건을 이고 지는 사람들, 나루와 장터를 누비는 여성 상인들을 보고 있으면, 저는 자연스럽게 전쟁과 혼란 이후에 ‘살아남아야 했던’ 조선 여성들의 얼굴이 겹쳐 보입니다.

이 글은 그 상상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1. 전쟁이 끝났다고, 삶이 끝난 건 아니었다

1592년 임진왜란과 그 뒤를 이은 정유재란은 조선을 완전히 뒤흔들었습니다. 수많은 민간인과 군인이 죽거나 다치고, 수십만 명이 포로로 끌려갔다는 추정이 있을 정도로 인명 피해가 컸습니다. 나라 곳곳의 농지와 마을도 심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위 내용은 위키백과 ‘임진왜란’ 항목을 참고했습니다.

숫자를 잠깐 떼어 내 감정 쪽으로 옮겨 보면, 풍경이 조금 바뀝니다.

  • 집집마다 최소 한 사람 이상은 돌아오지 않았고
  • 밭은 불탔거나, 세금과 소유권이 뒤엉킨 채 남아 있었고
  • 집안의 기둥이라던 남자들이 사라진 빈집이 곳곳에 생겼습니다.

이때 가장 먼저 역할이 바뀌어야 했던 사람들이 바로 여성들입니다. 어제까지는 ‘아내’와 ‘딸’이었던 사람들이, 전쟁이 지나간 뒤에는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이 됩니다.

게다가 여성들은 전쟁 중에도 또 다른 폭력과 마주했습니다. 당시 병사들의 성폭력, 포로가 된 여성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들 이야기가 후대의 글과 그림, ‘열녀’ 이야기 속에 남아 있는데, 일부 연구자들은 이를 통해 임진왜란 시기 성폭력과 그 뒤에 이어진 정절 중심의 담론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위 학술지는 서울대 규장각에서 발행하는 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를 참고했습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겠다”는 선택은,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큰 결심이었을지 모릅니다.

2. 피난, 귀환,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라는 무거운 숙제

전쟁이 터지면, 여성들에게 가장 먼저 주어지는 과제는 “일단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운 친척, 이웃과 함께 산속, 섬, 사찰로 피난을 떠나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남은 곡식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여성들만의 안전망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문제는 전쟁이 끝난 뒤입니다. 피난에서 돌아왔다고 해서, 삶이 자동으로 되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 집이 무너졌다면 다시 지어야 하고
  • 논밭이 버려졌다면 처음부터 일구어야 하며
  • 세금과 부역을 줄이거나 미루기 위해 관청과도 씨름해야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누가 했을까요? 남편과 아들이 돌아오지 못한 집에서는, 대부분을 여성이 떠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쟁 직후 여성들의 생존 전략은 크게 두 갈래로 갈라졌을 것 같습니다.

  1.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극한까지 키우기
  2. 집 밖으로 나가 ‘시장과 강’에 몸을 던지기

〈탁류〉가 보여주는 경강과 나루터, 장터는 바로 이 두 번째 길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혼탁한 강물 주변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누군가의 패배자이자, 또 다른 누군가의 생존자입니다. 그 가운데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겠지요.

3. 실 한 올이 곧 목숨 한 줄: 전쟁 뒤, 밤마다 짜올린 여성들의 생계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여성들의 손이 쉬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허덕이는 일상의 시작이었습니다.

저녁이면 집 안은 조용해지지만, 방 안에서는 베틀 소리가 밤늦게까지 그치지 않습니다. 베를 짜고, 삼베를 짜고, 올이 고른지 다시 살피고, 틈틈이 손바느질로 남의 집 옷을 꿰매는 일까지 더해야 했습니다. 오늘 밤에 짜 올린 천 한 필이 내일 아침 아이들 죽거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여성들의 방적, 길쌈과 바느질은 그저 ‘집안일’이 아니라, 현금을 만들어 내는 몇 안 되는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 어떤 천은 세금 대신 바치는 공물의 재료가 되고
  • 어떤 천은 장에 나가 쌀과 바뀌고
  • 어떤 바느질 품은 동전 몇 닢으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장에 나갈 여력이 되는 집이라면, 여성이 직접 장터에 나가 천을 펼쳐 놓고 손님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오늘 장사 잘돼서 많이 남겨야지”보다는, “오늘 것만이라도 팔리고 들어가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컸겠지요.

〈탁류〉의 여성 상인 ‘최은’을 떠올려 보면, 이런 풍경이 조금은 눈에 그려집니다. 그녀는 거대한 부를 쌓는 영웅이라기보다, 가족과 자기 삶을 지키기 위해 몸으로 뛰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전쟁 뒤 조선의 수많은 여성들도 누구는 베틀 앞에서, 누구는 장터 한켠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붙잡고 있었을 것이라고 저는 상상해 봅니다.

4. 정절 이야기와, 살아남은 여성들의 긴 침묵

한편, 공식 기록 속에서는 다른 장면이 더 자주 등장합니다.

  • 적에게 끌려가기 전에 강물에 몸을 던진 소녀
  • “정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인
  • 그들을 기리는 열녀문과 찬양문

임진왜란 이후, 이런 이야기를 정리하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남성 지배층은 ‘정절을 지킨 여성’을 이상적인 표본으로 내세웠습니다. 전쟁 중의 성폭력과 여성 피해를 다룬 연구들은, 이런 담론이 여성들의 실제 경험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채 “숭고한 희생” 이야기로 포장한 측면을 지적합니다.

전란 이후 열녀 이야기와 정절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논쟁은, 임진왜란기 여성 포로와 환향 여성의 경험을 다룬 여러 연구에서 꾸준히 다뤄져 왔습니다.

그러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끝까지 살아남아 아이들을 키우고, 밭을 일구고, 생계를 이어간 여성들은 왜 기록 속에서 그토록 조용할까요?

전쟁 중 성폭력을 당했거나, 강제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성들은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는 낙인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그들의 삶은 공식 기록 밖의 침묵으로 남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목숨을 버린 정절’에 대해서는 쉽게 말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감당해야 했던 선택들”에 대해서는 지금도 겨우겨우 상상해 볼 뿐입니다.

5. 전쟁은 끝나도, 여성들의 전쟁은 남는다

이 이야기는 임진왜란이라는 특정 시기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20세기 전쟁과 식민지 시기, 한국전쟁, 그리고 지금도 세계 곳곳의 분쟁에서 전쟁은 언제나 여성들에게

  • 피난민이 되는 것,
  • 가족의 생계를 떠맡는 것,
  • 전시 성폭력과 차별에 노출되는 것

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다양한 국제 보고서와 연구들도 무력 분쟁이 기존의 성차별 구조를 더 악화시키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키우는 경향을 계속 지적해 왔습니다.

그러니 〈탁류〉 속 혼탁한 강물과 경강 나루는, 단지 조선 후기의 배경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전쟁터와도 겹쳐 보이는 무대인지도 모릅니다.

강 위로 떠다니는 배, 강둑에서 물건을 나르는 여성들, 저녁마다 장터와 주막을 오가며 하루 벌이를 정리하는 얼굴들 속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감당한 여성들의 선택을, 우리는 어떤 말로 기억해야 할까?

전쟁기 조선 여성들의 생존 전략은 거대한 영웅담이라기보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방법”을 찾는 아주 구체적이고도 치열한 실험이었습니다.

〈탁류〉의 세계를 함께 보면서 그 실험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따라가 보는 일은, 결국 오늘을 사는 우리 각자가 “혼란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조용히 되묻는 일이기도 해 보입니다.

이 글에서는 큰 줄기만 간략히 짚어 보았습니다. 임진왜란기 여성 포로와 환향 여성, 정절 담론에 관해서는 서울대 규장각의 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를 비롯한 관련 학술 논문과 연구서를 함께 참고해 보시면, 보다 입체적인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 이 글은 〈드라마 〈탁류〉로 읽는 임진왜란 이후 세상〉 허브와 연결되는 개별 글입니다. 전쟁기 여성들의 생존 전략을 따라가 보셨다면, 이어지는 글 〈조선 후기 민생 경제의 실제〉에서 세금과 물가, 장터와 일자리를 중심으로 그 시대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펼쳐졌는지 함께 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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