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 시작하면서
- 삼충신 제향에서 출발하다: 망국의 교훈을 잊지 않다
- 무령왕릉 발굴과 공주의 참여: 왕조 전체의 역사로 확장되다
- 제도화와 전국적 확산: 행정력과 주민 주체성의 결합
- 망국의 기억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유산으로
- 부여와 공주 사람들의 기억과 오늘날의 의미
- 2025년 주요 행사 일정 (예시)
- 맺으며: 오늘날의 의미
시작하면서
한 나라의 망국(亡國)의 아픔을 기리는 작은 제사(祭祀)가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을 기념하는 거대한 축제가 될 수 있었을까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하지 않으세요?
2025년 10월, 백제의 옛 도읍지였던 부여와 공주에서는 제71회 백제문화제가 열립니다. 70여 년 전, 단 세 명의 충신을 부르던 소박한 외침이 오늘날 전국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축제가 되기까지―이 여정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삼충신 제향에서 출발하다: 망국의 교훈을 잊지 않다
백제문화제의 시작은 참 소박했습니다. 1955년, 6·25 전쟁 직후.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부여 사람들은 삼충신 제향을 올렸습니다.
- 계백: 황산벌에서 5천 결사대를 이끌고 신라군에 맞섰던 비극의 영웅. [《삼국사기》 권29, 백제본기7, 의자왕 20년조]
- 성충: “당과 신라가 연합하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라 간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옥에 갇혀 죽음을 맞았습니다.
- 흥수: 사비성 방어책을 마련하자고 했으나 묵살당했고, 결국 성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삼국사기》 권28, 백제본기6, 의자왕 20년조]
그 비극 앞에서 당시 부여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물었을 겁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가?”
오늘날 전국적 문화축제로 성장한 백제문화제는, 사실 이렇게 작은 제향에서 출발했습니다.
무령왕릉 발굴과 공주의 참여: 왕조 전체의 역사로 확장되다
1966년, 웅진(공주)은 한때 백제의 두 번째 수도였으니, 공주가 축제에 합류합니다. 참여는 어쩌면 당연했죠.
그리고 1971년.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무령왕릉이 극적으로 발굴되자 진짜 난리가 났습니다! 도굴되지 않은 채 남아 있던 무덤 속 금제관식, 청동 거울, 지석… 와, 이건 그냥 고고학의 교과서급 발견이었어요.
이 사건을 계기로 백제문화제는 단순히 충신 제향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웅진-사비기의 왕조 전체 역사와 문화를 기리는 무대로 성격이 확장된 겁니다. 공주와 부여, 두 고도가 비로소 축제를 통해 하나로 묶였다고 할까요?
제도화와 전국적 확산: 행정력과 주민 주체성의 결합
1970년대 이후 백제문화제는 충청남도가 나서면서 제도적 기반을 갖추게 됩니다. 선양위원회가 설치되고, 예산도 안정적으로 확보되었죠.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공주와 부여가 행사를 격년제로 개최하기 시작하면서 주민 참여도 훨씬 늘었습니다. 준비할 시간도 여유가 생기고, 프로그램도 더 다채로워졌거든요.
2000년대 들어서는 민간 중심으로 추진 체계가 바뀌었습니다. 국제 학술대회, 퍼레이드, 체험 프로그램… 제가 직접 갔을 때는 아이들이 갑옷을 입고 활을 쏘며 즐거워하더군요. “아, 이게 그냥 역사 축제가 아니라 가족 축제구나” 하고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망국의 기억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유산으로
1955년, 삼충신을 기리던 작은 외침. 60년 뒤인 2015년, 드디어 세계가 응답했습니다.
공주·부여·익산에 걸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죠.
유네스코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 유적들은 백제가 동아시아에서 이룩한 문화 교류와 예술적 성취를 잘 보여준다.” 왕도의 성곽, 절터, 고분군이 어우러진 풍경은 그 자체로 백제의 정치·종교·문화를 입체적으로 드러냅니다. 흔치 않은 사례죠.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문화유산 등재 타임테이블
연도 | 주요 과정 | 설명 |
---|---|---|
2007년 | 등재 잠정목록 등재 | 문화재청이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림 |
2010년 | 유산 발굴·정비 강화 | 공주·부여·익산 주요 유적 발굴·보수 사업 추진 |
2011년 | 등재 신청서 1차 제출 |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 (이후 보완 권고) |
2014년 | 최종 신청서 제출 | 보완 요구를 반영해 다시 신청 |
2015년 7월 | 세계유산위원회 최종 등재 |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확정 |
등재 대상 | 공주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 부여 관북리·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 / 익산 미륵사지, 왕궁리 유적 백제 왕도의 성곽·사찰·왕릉이 포함됨 |
결국 백제문화제는 망국의 충신 제향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세계가 함께 기리는 무대로 성장했습니다. 한 나라의 아픔을 넘어, 한 민족의 정체성을 세계사 속에 다시 세운 겁니다.
부여와 공주 사람들의 기억과 오늘날의 의미
부여와 공주의 주민들에게 백제문화제는 단순한 관광 행사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 이들에게 축제는 삶의 일부이자 매년 확인하는 “우리가 누구인가”의 선언 아닐까요?
- 망국의 충절을 잊지 않고 기리는 역사적 의무,
- 조상의 문화를 후손에게 전하는 교육의 장,
- 그리고 이웃과 함께 자부심을 공유하는 사회적 의례.
오늘날 화려한 퍼레이드 속에서 흐르는 건 단순한 흥겨움이 아닙니다. 70년 전 부여 사람들이 올린 작은 제향이 품었던, 망국의 교훈과 충절의 정신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백제문화제는 과거 재현의 자리가 아니라, 지역민의 기억과 자부심이 만들어낸 부활의 서사입니다. 그리고 그 서사는 우리 모두가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미래로 이어갈 것인가”를 묻는 거울이 되고 있죠.
2025년 주요 행사 일정 (예시)
※ 실제 일정은 백제문화제 공식 홈페이지 공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일자 | 장소 | 주요 행사 |
---|---|---|
10월 4일 (토) | 부여 정림사지 | 개막식, 백제의 빛 퍼레이드 |
10월 5일 (일) | 공주 공산성 | 웅진성 퍼레이드, 충헌대제 |
10월 6~10일 | 부여·공주 시내 일원 | 전통문화 체험마당, 학술대회, 어린이 백제마당 |
10월 11일 (토) | 공주 금강신관공원 | 백제 무용 공연, 불꽃놀이 |
10월 12일 (일) | 부여 구드래 광장 | 폐막식, 백제문화 융합 공연 |
맺으며: 오늘날의 의미
백제문화제의 역사는 단순한 축제사가 아닙니다. 삼충신 제향에서 세계문화유산까지, 그 여정은 망국의 아픔을 기억하고, 문화를 통해 다시 일어선 한 왕조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백제문화제를 바라보며 던질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 우리는 무엇을 기리고, 무엇을 잊지 않으려 하는가?
- 지역 축제 속에 담긴 역사의 기억을, 어떻게 미래 세대와 공유할 것인가?
올해 제71회 백제문화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는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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