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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71

난파선 위에서 빛난 경강상인 김세만의 기업가 정신 경강상인 김세만은 난파 사고 속에서도 곡식 100석을 공동체에 내어주며 사회적 책임을 실천했습니다.그의 선택은 단순한 장사꾼이 아닌 위기를 기회로 바꾼 기업가 정신의 상징이었습니다.난파 속에서 피어난 선택기록으로 남은 선택위기를 기회로 바꾸다또 다른 길, 제주 김만덕오늘의 시사점요즘 드라마를 보면 종종 경강상인이 등장합니다.포구를 장악하고, 권세가와 맞서 싸우며, 한양의 상권을 흔드는 모습이죠.2025년 9월 26일 공개 예정인 디즈니+ 드라마 도 혼탁한 세상 속에서 운명을 개척하는 경강상인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합니다.그런데 혹시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나요?이거, 드라마니까 저렇게 과장한 거 아니야?아닙니다. 실제 역사 속 경강상인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그중에서도 기록으로 남은 .. 2025. 9. 17.
연산군과 광대, 그리고 창작된 인물 공길 연산군과 광대 공길, 그는 실존했을까? 《연산군일기》 속 단 한 줄 기록과 영화·드라마 속 창작 캐릭터의 차이를 통해 향락 정치의 교훈을 살펴봅니다.영화 속 공길, 사 속 실존?혹시 영화 〈왕의 남자〉 보신 분 계신가요?또 요즘 뜨거운 인기 드라마 〈폭군의 셰프〉를 보고 계신다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인물이 있을 겁니다.바로 연산군 곁에서 노래하고 춤추던 광대 공길이죠.섬세한 외모, 뛰어난 재능, 왕의 총애까지. 그런데,여기서 잠깐!《연산군일기》를 아무리 뒤져봐도 공길이라는 이름은 단 한 번 등장합니다.정말 놀랍지 않나요? 그 기록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연산군일기》 속 공길연산군일기 11년 12월 29일(1505년)원문 (한자본) “優人 孔吉, 作老儒戲曰: ‘殿下爲 堯、舜 之君, 我爲 皋陶 之臣。 堯、舜.. 2025. 9. 15.
폭군 연산군의 ‘엔터테인먼트’ 사랑, 주지육림의 현장 본문 바로가기목차사건(인물) 개요발생 배경과 시대 상황전개 과정사료 기록야사·이설과 그 진위결과와 의의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오늘날의 의미관련 장소·유적·기념관 소개마무리사건 요약 비교표사건 연표독자 참여 코너폭군 연산군의 ‘엔터테인먼트’ 사랑, 주지육림의 현장사건(인물) 개요연산군(1476~1506, 재위 1494~1506)은 조선의 제10대 왕으로,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군주로 손꼽힙니다.그의 통치는 화려한 향락과 무분별한 정치 탄압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궁궐을 하나의 거대한 유흥장으로 바꾸어 버린 인물입니다. 흔히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이미지는 오늘날까지도 뚜렷합니다.발생 배경과 시대 상황성종 사후, 어린 나이에 즉위한 연산군은 태생적 불안감을 안고 있었습니다... 2025. 9. 11.
사림과 훈구의 격돌, 연산군 시대의 서막 /> 사림과 훈구의 격돌, 연산군 시대의 서막훈구와 사림, 두 산맥의 충돌조선 전기의 정치 무대에는 두 개의 거대한 산맥이 있었습니다. 바로 훈구파와 사림파입니다. 훈구는 말 그대로 “공훈 있는 신하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를 때 공을 세운 무리들이었죠. 이들은 권력을 쥐고 막대한 토지를 차지하며, 왕실과 혼인 관계로 얽히면서 기득권의 철옹성을 쌓았습니다. → 비유하자면, 재벌가와 정치를 함께 잡은 구세대 엘리트 집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사림은 숲속에 은둔한 선비들. 지방에서 학문을 닦던 신진 세력으로, 성리학적 도덕과 이상 정치를 내세웠습니다. → “원칙은 목숨처럼 지켜야 한다”는 젊은 개혁파, 요즘식으로 말하면 “청년 정치인+스타트업” 같은 이미지였죠. 두 집단은 처음부터 권력의.. 2025. 9. 10.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왕이 두려워한 것은 기록이었다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왕이 두려워한 것은 기록이었다📌 왕이 가장 두려워한 존재, 사관과 사초조선 시대의 왕은 절대 권력을 쥐고 있었지만, 감히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사관(史官)과 그들이 남긴 사초(史草)입니다. 사관은 임금의 언행과 정치 상황을 빠짐없이 기록했고, 이 기록은 후일 《조선왕조실록》 편찬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사초는 임금조차 열람하거나 수정할 수 없다는 불문율이 있었기 때문에,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의 권위는 왕권을 넘어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연산군은 이 기록을 두려워했고, 결국 극단적인 정치 탄압으로 이어졌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였습니다.⚔ 무오사화(1498): 조의제문이 불러온 피바람무오사화는 연산군 4년(1498)에 발생했습니다. 발단은 김.. 2025. 9. 9.
연산군 앞에서 간언하다 죽은 내시, 김처선 이야기 연산군 앞에서 간언하다 죽은 내시, 김처선 이야기사극 속 폭군과 충언의 상선최근 방영 중인 사극 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연산군 시대의 화려하지만 불안한 궁중 생활을 배경으로, 권력자의 잔혹성과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요. 그런데 실제 역사 속에도 연산군 곁에서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바른 말을 하다 참혹하게 죽은 내시가 있었습니다. 그는 천한 신분의 상선(尙膳)이었지만, 권력 앞에서도 양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 인물, 김처선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연산군 시대와 정치적 상황조선 제10대 왕 연산군(재위 1494~1506)은 폭군의 대명사로 남아 있습니다. 즉위 초에는 세금 감면과 억울한 유배자 석방 등 선정을 베풀었으나, 어머니 폐비 윤씨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후 성.. 2025.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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