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고려사24 몽골에 끝까지 맞선 독립 투쟁, 삼별초의 위대한 발자취 몽골에 끝까지 맞선 독립 투쟁, 삼별초의 위대한 발자취안녕하세요,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사' 블로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오늘은 우리 역사 속에서 굳건한 자주정신과 항몽 의지를 불태웠던 전사들, 삼별초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교과서에서 스쳐 지나갔던 이름이지만, 그 이면에는 뜨거운 열정과 비극적인 결말, 그리고 오늘날에도 유효한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이제 고려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삼별초의 여정 속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삼별초, 그들은 누구였을까?삼별초는 단순히 무신정권의 사병이 아니라, 고려 후기 국방의 중추를 담당했던 중요한 군사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의 시작은 최우가 만든 **야별초(夜別抄)**였는데, 이는 야간 순찰과 도둑 체포를 위한 특수부대였죠.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좌별초와 .. 2025. 8. 12. 백성을 위한 희생: 문익점의 목화씨 반입, 그리고 탄압과 몰수 뒤에 숨겨진 진실 ⬥ 사건의 서막 – 고려 말의 혹독한 겨울과 문익점의 등장14세기 중엽 고려 말은 국력 쇠퇴와 사회 혼란이 극심했습니다.몽골(원)의 침략, 권문세족의 횡포, 잦은 왜구 침입으로 백성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당시 의복 재료는 삼베·모시가 주류여서 겨울 한파를 막기 어려웠습니다.문익점(文益漸, 1329~1398)은 공민왕 9년(1360)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파견됩니다.그곳에서 그는 값비싼 비단보다도, 따뜻하고 실용적인 목화(木花)가 백성들에게 필요함을 직감했습니다.📜 사료 근거《고려사》 권137, 열전 문익점조에는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와 재배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운반 방법은 구체적으로 적혀 있지 않습니다.⬥ 목숨을 건 반입 – 금지 품목이 된 목화씨원나라에서는 목화씨 반출.. 2025. 8. 11. 고려 복지의 시작, 흑창(黑倉) – 단순한 창고가 아니었다! 고려 복지의 시작, 흑창(黑倉) – 단순한 창고가 아니었다!안녕하세요,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사’ 블로거입니다.오늘은 고려시대의 독특한 복지 제도인 흑창(黑倉)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여러분은 우리 역사 속 복지 제도의 시작이 언제라고 생각하시나요?많은 분이 고구려의 진대법(賑貸法)을 떠올리실 텐데요. 가난한 백성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나중에 갚게 한 진대법은 동아시아에서도 선구적인 복지 정책으로 평가받습니다.고려의 태조 왕건은 이 정신을 계승하여, 흑창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복지의 씨앗을 틔웠습니다.❖ 흑창이란 무엇인가?흑창은 ‘검은 창고’라는 뜻으로, 국가가 주관하여 설치한 곡식 보관 창고입니다.가장 굶주리는 봄철 보릿고개에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 수확기에 이자 없이 .. 2025. 8. 10. 불화살을 넘어선 불의 힘 - 진포대첩과 최무선 화포 개발의 서사 불화살을 넘어선 불의 힘 - 진포대첩과 최무선 화포 개발의 서사1. 왜구의 그림자, 고려의 바다를 뒤덮다: 최무선과 진포대첩, 화포 개발의 서막고려 말, 우리 바다는 평화와는 거리가 먼 전쟁터였습니다. 왜구(倭寇)라 불리는 일본 해적들이 금강, 낙동강 등지로 끊임없이 침입해 마을을 약탈하고 백성들을 위협했죠. 육지에서는 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고려도 왜구의 기습적인 해상 공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이 위기의 시기, 최무선(崔茂宣)이라는 인물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그는 평범한 관리였지만, 나라를 구하겠다는 사명감으로 ‘불의 무기’, 즉 화약(火藥)과 화포(火砲)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당시 화약 제조법은 중국에서만 은밀히 다루던 최첨단 비밀 기술이었기에, 이를 독자적으로 개발한다는 것 자체가 ‘.. 2025. 8. 9. 위화도 회군 그 이전의 진실: 최영과 이성계의 갈등이 빚어낸 역사적 전환점 위화도 회군 그 이전의 진실: 최영과 이성계의 갈등이 빚어낸 역사적 전환점안녕하세요,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사’ 블로거입니다.오늘은 고려 말 역사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꾼 ‘위화도 회군’의 배경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흔히 이성계의 전략적 판단으로 평가되는 이 사건은, 사실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정치적 갈등과 두 영웅의 가치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고려의 마지막 충신 vs. 신흥 권력의 선두주자최영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부친의 유훈처럼 청렴하고 충절을 지킨 고려 무장이었습니다. 오직 왕실과 백성을 위한 정치를 지향하며, 무너져가는 고려 왕조를 다시 세우고자 했습니다.반면 이성계는 왜구와 홍건적을 물리친 전공으로 부상한 신흥 무장으로, 낡은 체제에 회의를 품고 새로운 국가 질서를 구.. 2025. 8. 9. 왕실의 권력 투쟁 이자겸, 고려를 흔들다 왕실의 권력 투쟁 이자겸, 고려를 흔들다안녕하세요!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한국사’ 블로그 지기입니다.오늘은 고려 시대를 뒤흔든 권력 암투, 바로 이자겸의 난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혹시 사극에서 왕실 외척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본 적 있으신가요? 실제 고려 역사에는 외척의 힘이 하늘을 찌를 듯했던 시기가 있었고, 그 정점에 선 인물이 바로 이자겸입니다. 무려 두 명의 왕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심지어 손녀마저 왕비로 만들어 전무후무한 권력을 손에 넣었죠. 이 글에서는 이자겸의 끝없는 야망이 어떻게 왕실과 사회 전체에 충격파를 주었는지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겠습니다.⬥ 왕권을 위협한 외척의 야망이자겸(李資謙, 1067~1126)은 고려 최고의 명문가인 경원 이씨(인주 이씨) 가문의 수장이었.. 2025. 8. 8. 이전 1 2 3 4 다음 반응형